“광복후 경제 건설 문학작품 찾아라” 文대통령, 납북시인 김기림의 詩 낙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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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아무도 흔들수 없는 나라’ 구절 인용
심훈 ‘그날이 오면’도 경축사에 등장

반일 대신 극일 강조한 8·15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절 74주년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일 무역 갈등과 관련해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겠다”고 했다. 독립기념관에서 광복절 경축식이 개최된 것은 15년 만이다. 천안=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반일 대신 극일 강조한 8·15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절 74주년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일 무역 갈등과 관련해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겠다”고 했다. 독립기념관에서 광복절 경축식이 개최된 것은 15년 만이다. 천안=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 나라의 심장에/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이고 철판을 펴자/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가자.”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의 도입부에서 시 한 구절을 인용했다. 문 대통령이 “해방 직후, 한 시인은 광복을 맞은 새 나라의 꿈을 이렇게 노래했다”고 표현한 이 시는 시인 김기림의 ‘새나라송(頌)’이다. 1908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난 김기림은 모더니즘 계열을 거쳐 현실 참여문학에 깊게 관여했고, 광복 후에는 좌파 성향의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했다. 1948년에는 ‘새나라송’ 등을 담은 시집 ‘새노래’를 펴냈지만, 6·25전쟁 이후 납북됐다.

경축사에 이 시가 등장한 것은 “광복 직후 문학작품 중 경제 건설과 관련한 좋은 이야기를 찾아보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연설비서관실은 경제 건설을 다룬 여러 편의 시를 찾아봤고, 최종적으로 문 대통령이 김기림의 시를 낙점했다. 이날 경축사의 핵심 메시지인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문 대통령은 또 경축사에서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라는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도 인용했다. 항일시의 대표 격인 ‘그날이 오면’은 광복을 염원하는 작품 가운데 문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알려져 있다. 앞서 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도 윤봉길 의사의 종손인 윤주빈 씨가 심훈의 옥중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한 달 전부터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회의를 갖는 등 경축사 준비에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시인 출신인 신동호 연설비서관이 초고를 맡고 이번 주초 문 대통령이 최종 원고를 완성했다.

▼ “새로운 한반도” 대목서 주먹 불끈 쥐고 흔들어 ▼

文대통령, 한복두루마기 입고 참석… 초등생들과 함께 전시관 관람도
靑, 경축사 일본어 번역본 첫 공개… “민감한 시기 정확한 전달 필요”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 한복 두루마기 차림으로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와 올해 3·1절 기념식에서도 두루마기를 입고 참석한 바 있다.

2004년 이후 15년 만에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와 “새로운 한반도”를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경축사의 마지막 부분인 “‘새로운 한반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문 대통령이 취임 뒤 공식 연설에서 주먹을 쥐는 제스처를 선보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또 경축사에서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는 남강 이승훈 선생의 말을 인용했다.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남강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참여했고, 문 대통령이 인용한 이 말은 독립기념관 내 독립운동가 어록비에도 새겨져 있다.

이날 행사의 주제어인 ‘우리가 되찾은 빛, 함께 밝혀 갈 길’은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필체로 만들어져 행사장 전면에 걸렸다. 좌·우측 벽면에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와 미래 100년 소망을 담은 ‘100년의 소원 태극기’, 광복군의 조국 광복 염원이 담긴 ‘광복군 서명 태극기’가 각각 내걸렸다.

문 대통령은 경축식이 끝난 뒤 초등학생들과 독립기념관 내 전시관을 관람했다. 1918년 만주,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39명이 참여한 ‘무오독립선언서’를 본 문 대통령은 학생들에게 “잘 봐야 한다. (1919년) 3월 1일 낭독된 선언서보다 더 먼저 작성된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청와대는 경축사를 작성하기 위해 교수 등 전문가 그룹과 국회의원 등에게 경축사에 담길 내용을 묻는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그 결과 ‘경제 관련 언급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경축사에도 비중 있게 반영됐다. 청와대는 경축사의 영어 번역본뿐만 아니라 일본어 번역본도 공개했다. 외신을 위해 영어 번역본을 공개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일본어 번역본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감한 시기인 만큼 (일본에도) 경축사가 정확히 전달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문재인 대통령#광복절#경축사#김기림#새나라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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