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향한 절규[이준식의 한시 한 수]〈19〉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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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쥐야, 큰 쥐야/내 기장 먹지 마라. 삼 년 너를 섬겼거늘/나를 돌보지 않는구나. 내 장차 너를 떠나/저 낙원으로 가리라. 낙원이여, 낙원이여/내 거기서 편히 쉬리라. (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 樂土樂土, 爰得我所) ―‘큰 쥐(제1장)(碩鼠·석서)’(위풍·魏風)》
 
동서고금을 통해 도무지 인간과 친해지기 어려운 동물 쥐. 시에는 ‘큰 쥐’가 등장했고 화자는 그놈을 3년씩이나 섬겨 왔다고 말한다. 3은 ‘오래’ 혹은 ‘자주’를 뜻한다. ‘큰 쥐가 내 기장을 먹는’ 행위는 지배층의 가렴주구를 겨냥한 직설이다. 원시 민요답게 문학적 기교 대신 절박한 메시지 전달에 초점을 맞추었다. 섬김이 배신당하고 반항이 무기력하다고 느꼈을 때 그 유일한 대안은 도피다. 화자는 비명처럼, 고해성사처럼 ‘낙원이여’를 반복하는 것으로 삶의 공포와 고통을 절규한다. 단순성으로 더 간절하고 호소력이 강렬한 게 민요의 속성이겠다. 이 노래는 모두 3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2, 3장에서도 큰 쥐는 ‘내 보리’와 ‘내 모종’을 먹어치운다고 노래했다. 이 민요의 가창자는 시인 김지하가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이라고 한 효용성을 까마득히 오래전에 이미 체득하고 있었을 터다.

이 시는 중국 최초의 시가집 ‘시경’에 등장하는데 기원전 5, 6세기 무렵 민간에서 불렸다. 민중의 불온한 선동 같기도 한 이런 노래가 어떻게 봉건 전제군주 지배하에서도 수천 년 이어질 수 있었을까 싶겠지만, 기실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민요를 통해 민심을 살피고 정치적 득실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실용적 목적이 따로 있었다. 시제 ‘석서’는 시의 첫 낱말을 딴 것이고 위풍은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민요라는 말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큰 쥐#위풍#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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