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에 언론·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8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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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글로벌 팩트 체킹 서밋

“방글라데시에서는 팩트 체크로 돈을 벌 수 없다. 정부는 팩트 체크 기관을 공식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탄압한다. 작년 선거 때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가짜 팩트 체크 기관을 만들어서 국민들을 현혹시키기도 했다. 팩트 체크를 통해 진실을 알리는 것이 힘든 환경에 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에게 팩트 체크는 더욱 필요하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미국 서던일리노이대학교에서 유학 중인 가헤두르 아르만 씨. 그는 방글라데시 최초의 팩트 체크 전문 기관을 자임하는 ‘BD(방글라데시) 팩트체크’의 설립자다. 아르만 씨만 미국에 머물고 있고 BD 팩트체크의 나머지 6명은 모두 방글라데시에 있다. 7명 모두 무보수 봉사활동 형태로 일한다. 그는 지난달 18~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대학교에서 열린 ‘제6회 글로벌 팩트 체킹 서밋(이하 글로벌 팩트)’에서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 팩트 체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역설했다. 행사의 공식 연사로서는 물론이거니와 생면부지의 한국 기자에게도 수차례 설명했다. 그에게, 그의 나라에게 팩트체크는 필요함을 넘어서 절실해 보였다.

BD 팩트체크 설립자 가헤두르 아르만 씨는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 팩트 체크는 어렵지만 절실한 과제”라고 말했다/IFCN 제공
BD 팩트체크 설립자 가헤두르 아르만 씨는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 팩트 체크는 어렵지만 절실한 과제”라고 말했다/IFCN 제공

2014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팩트는 각국 팩트 체크 기관들이 모여 팩트 체크 강화를 위한 연대를 모색하고 글로벌 기준을 논의하는 자리다. 나날이 발전하는 팩트 체크 자동화 기술도 접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같은 전통적인 언론사부터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BD 팩트체크처럼 독립적인 팩트 체크 전문 기관, 팩트 체크 자동화 프로그램 개발 벤처기업 등 다양한 기관들이 참여한다. 올해는 55개국에서 251명이 참가했고 한국에서는 동아일보 등 언론사 및 SNU 팩트체크센터 등에서 11명이 참석했다.

글로벌 팩트에 모인 사람들은 팩트 체크에 언론의 미래 나아가서는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렸다고 본다. 언론의 역할이 정치인 같은 유명인의 발언을 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발언의 진위를 확인하고 진실 여부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팩트 체크 영역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빌 어데어 미국 듀크대 교수가 글로벌 팩트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글로벌 팩트 창설 주역 중 한 명이다/IFCN 제공
팩트 체크 영역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빌 어데어 미국 듀크대 교수가 글로벌 팩트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글로벌 팩트 창설 주역 중 한 명이다/IFCN 제공

현재 팩트 체크를 주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글로벌 팩트도 미국 미디어 교육기관인 포인터 재단이 설립한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이 주관하는 행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팩트 체크할 대상도 많고, 팩트 체크를 수행할 기관과 사람도 많고, 구글 등 팩트 체크 자동화를 도와줄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도 많은 미국이기에 전 세계 팩트 체크를 선도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케이프타운에 모인 팩트 체크 전사(戰士)들이 밝힌 자국의 팩트 체크의 중요성은 결코 미국에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방글라데시처럼 정치적 환경이 불안정할수록 팩트 체크는 더욱 중요해진다. 집권세력이 독재를 꿈꾸고 언론과 국민을 통제하려할수록 진실은 감춰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터키 같은 나라가 대표적이다. 터키에서 정치인들의 발언을 검증하는 팩트 체크 기관인 도으룰루크 파이 소속의 바투한 에르순은 글로벌 팩트 패널 토론에서 “TV 생중계를 통해 정치인 발언의 진실 여부를 즉시 표기해주는 서비스는 터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 서비스 자체가 허가가 안 된다는 의미다. 인도에서 온 글로벌 팩트 참가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가짜뉴스가 전파되고 악용되는 일이 빈번하다’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팩트에서 패널 토론에 나선 참가자들/IFCN 제공
글로벌 팩트에서 패널 토론에 나선 참가자들/IFCN 제공

2019년 글로벌 팩트가 처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열린 것도 아프리카 팩트 체크 기관 연합체인 아프리카 체크가 팩트 체크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개최를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이다.‘설마 그런 가짜뉴스를 사람들이 믿어?’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일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비타민C는 바다 속에 있다’, ‘백신에는 악마의 영혼이 들어 있다’ 같은 잘못된 의학 정보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가짜뉴스들은 비타민C 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누군가 부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고, 백신 접종을 거부해 전염병을 확산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프리카처럼 정확한 정보를 얻고 공유할 수 있는 토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에 SNS 도구가 전파되면 악용될 위험도 크다. 남아공을 비롯해 아프리카 곳곳에서 한국의 카카오톡처럼 쓰이는 ‘왓츠앱’이 대표적이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미국국제언론인센터(ICFJ)의 한나 오조 씨는 “아프리카 선거에서 왓츠앱은 잘못된 정보 확산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올해 6회째를 맞은 글로벌 팩트는 아프리카에서는 처음 열렸다. 때문에 아프리카 곳곳에서 발생하는 가짜뉴스의 폐해들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IFCN 제공
올해 6회째를 맞은 글로벌 팩트는 아프리카에서는 처음 열렸다. 때문에 아프리카 곳곳에서 발생하는 가짜뉴스의 폐해들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IFCN 제공

많은 글로벌 팩트 참석자들은 세계가 직면한 가짜뉴스의 폐해는 이미 한 기관이나 한 국가가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많은 참석자들이“함께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방식도 다양하게 언급됐다. 스페인 팩트 체크 기관인 말디타의 클라라 히메네스 크루스는 지역 커뮤니티 속에서 팩트 체크를 위한 협업군을 구성하는 걸 제안했다. 팩트 체크를 위해서는 가짜뉴스가 쓰여진 언어를 이해해야 하고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도 필요하다. 전문 지식이 요구될 때도 있다. 크루스 씨는 “‘발렌시아에서 러시아 말을 하는 의사’처럼 커뮤니티 구성원마다 가진 역량을 합치면 팩트 체크가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진실을 위한 군대(Army for the Truth)’란 표현으로 의미를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팩트 체크 기관인 템포의 이키 닝티아스 웅그라인 씨는 “기존 주류 언론과 협업, 대학교 등 교육기관과의 협업 등 다양한 협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국에서 모인 글로벌 팩트 참가자들. 이들은 한목소리로 ‘글로벌 연대’를 강조했다/IFCN 제공
각국에서 모인 글로벌 팩트 참가자들. 이들은 한목소리로 ‘글로벌 연대’를 강조했다/IFCN 제공

경제 선진국이라 여겨지는 나라에서도 팩트 체크의 중요성은 점차 강조되고 있다. 일본 팩트 체크 전문 기관인 ‘씨드 포 뉴스 재팬(Seeds for News Japan)’ 설립자 다테이와 요이치로는 “아시아 국가들을 보면 부유한 국가든 가난한 국가든 정부가 계속 언론에 압력을 가한다는 점에서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2017년까지 NHK 기자였다. 그는 “일본에서는 적잖은 사람들이 경제가 좋으면 정부가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 물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경제 선진국인 한국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전 세계 팩트 체크를 선도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임을 상기해보면 경제 규모와 민주주의 성숙도와는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팩트 체크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만을 팩트 체크 대상으로 삼아서는 팩트 체크를 확장시키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모든 사람을 검증하고 감시할수록 팩트 체크에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이념적 편향성 논란도 줄어든다.

6회 글로벌 팩트 연사로 나선 글렌 케슬러 미국 워싱턴포스트 편집장. 워싱턴포스트는 2007년 팩트 체크 전문 서비스인 
‘팩트체커’를 시작해 미국 팩트체크 영역을 크게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케이프타운=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6회 글로벌 팩트 연사로 나선 글렌 케슬러 미국 워싱턴포스트 편집장. 워싱턴포스트는 2007년 팩트 체크 전문 서비스인 ‘팩트체커’를 시작해 미국 팩트체크 영역을 크게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케이프타운=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정확한 팩트 체크를 뒷받침할 기술과 제도 설립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글로벌 팩트에서도 팩트 체크 자동화는 주요 화두였다. 자동화가 현재 활발하게 논의되는 팩트 체크 영역이라면 가짜뉴스 확산을 막고 부작용을 줄일 법적 제도 마련은 또 하나의 과제로 제시됐다. 글로벌 팩트를 주관한 IFCN의 다니엘 푼크 기자는 “가짜뉴스를 막을 보편적인 법의 가이드라인을 정리해놓으면 아직 팩트 체크가 활성화 돼 있지 않은 나라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역마다 다른 정치적 환경과 언어 차이 등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겨진다.

글로벌 팩트 행사 기간동안 팩트 체크의 가치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팩트 체크가 여전히 생소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정은령 SNU 팩트체크센터장은 “미국이나 서유럽뿐만 아니라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저개발국가 등 거의 모든 지역에서 팩트 체크 중요도에 대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은 이제 더 이상 한국도 결코 예외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팩트 체크를 할 여건이 안 된다는 말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의미다.

“팩트 체크는 더 이상 (누군가의) 취미가 아니다. 미래를 위한 우리 모두의 싸움이다.”

IFCN 최고책임자인 바이바르스 외르세크가 글로벌 팩트에서 가장 힘주어 외친 말이다. 미래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며 이 기사를 읽을 수 있는 ‘우리’도 예외일 순 없다.

IFCN 최고책임자인 바이바르스 외르세크는 “팩트 체크는 미래를 위한 우리 모두의 싸움”이라고 말했다./IFCN 제공
IFCN 최고책임자인 바이바르스 외르세크는 “팩트 체크는 미래를 위한 우리 모두의 싸움”이라고 말했다./IFCN 제공


글로벌 팩트를 위해 케이트타운대학교에 모인 각국 참가자들/IFCN 제공
글로벌 팩트를 위해 케이트타운대학교에 모인 각국 참가자들/IFCN 제공


※이번 취재는 한국언론학회와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산하 SNU팩트체크센터 지원으로 진행했습니다.

케이프타운=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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