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난민 문제, 갑질과 괴롭힘…우리의 ‘인권 감수성’은 몇 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3일 15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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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구정우 지음
320쪽·1만5000원·북스톤

#1. 정신병원장 A 씨는 최근 경찰로부터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넘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유는 최근 6개월간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운전자들에 의한 교통사고가 2배 이상 늘어나 이들에 대한 운전교육을 강화해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것이었다.

#2. 정부가 2030년까지 가칭 국가유전정보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다. 모든 신생아들의 유전정보를 채취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질병원인 연구를 하고 범죄자를 식별하겠다는 구상이다.

가상의 상황을 염두해 둔 이 같은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 문항은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가 2015년 개발한 ‘인권감수성 테스트’의 일부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 국가의 요구에 응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정보 침해이므로 거부할 것인가?

이 테스트에는 4년여 간 무려 6만 명이 넘는 학생과 시민이 설문에 참여했다. 약간의 재미와 정보를 위해 각자 얻은 점수에 해당하는 국가를 예시로 보여주는데 덴마크는 90점으로 가장 높다. 80점 이상~90점 미만에는 독일 프랑스 일본, 70점 이상~80점 미만에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속해 있다. 북한과 소말리아는 최하위로 나타난다.

객관적인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 인권지수는 상위권에 속한다. 시민 대부분이 인권 개념을 인식하고 있고, 인권교육 역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오표현, 난민 문제, 갑질과 괴롭힘,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페미니즘 갈등 등을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각종 이슈에 숨겨져 있는 인권 코드를 끄집어낸다. 논쟁적인 주제의 찬반 입장을 소개하고, 서로의 주장에 담긴 이론적 배경과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정답보다는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2010년 국내에 소개돼 인기를 끈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국판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범죄자의 인권 문제를 보자. 성범죄자의 엽기적인 행각을 다룬 보도가 나오면 ‘화학적 거세’나 ‘징역 100년’이라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엄벌주의만으로는 범죄자의 재범률을 떨어뜨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노르웨이의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를 ‘교육생’으로 부르며 사회 복귀에 초점을 둔다고 한다. 이로 인해 노르웨이의 재수감 비율은 약 20%로 미국(67.5%), 영국(50%)에 비해 현격히 낮다.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미래의 범죄를 막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난해 예맨 출신 난민 561명이 제주도에 한꺼번에 들어오자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는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인원 통계를 보면 내국인 평균이 3495명인데 비해 외국인 평균은 1735명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독일 등 해외의 난민 범죄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이들의 인권 보호에 눈을 감은 것은 아닌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인권 사회학’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학술 용어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비유와 사례를 통해 풀어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학습이 부족했던 한국 사회가 참고해야할 책이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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