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페리 ”한국인의 열정에서 美음악산업의 대안적 청사진을 봐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일 20시 14분


코멘트

명곡 ‘What‘s Up’의 주인공


“어려서부터 가난했죠. 싸구려 분유 가루를 물에 타 마시고 참치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웠으니까요. 8학년에 학교를 자퇴하고 15세에 가출했어요. 공원에서 노숙하며 약물에 찌들었죠.”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퇴계로에서 만난 미국 가수 린다 페리(54)는 “너무 일찍 타버린 인생의 잿더미에서 언젠가 불사조처럼 날아오를 날을 꿈꿨다‘고 회고했다.

그의 날개는 노래였고 팝 음악계의 슈퍼우먼이 됐다. 밴드 ’4 넌 블런즈‘의 보컬로서 1992년 히트 곡 ’What‘s Up’을 짓고 불렀다. 밴드 해체 뒤엔 셀린 디옹, 아리아나 그란데, 아델을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 2월 그래미어워즈 ‘올해의 프로듀서’ 후보에 올랐다. 여성이 이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은 15년 만이다. 영화 ‘덤플링’ 음악으로 올해 골든글로브 후보에도 올랐다. 이 여걸의 시작, ‘What’s Up‘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7억20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내 작은 방에서 강아지를 보다 지은 곡이에요. ’내 한 몸 건사가 힘든 삶, 강아지까지 주워오다니…‘ 하고 한숨쉬다 무심결에 통기타를 들었죠.“

단 세 개의 기타코드(A-Bm-D)에 맞춰 귀신에 홀린 듯 첫 소절(’25년을 살았는데 내 삶은 아직 희망의 언덕을 오르려 애써‘)이 튀어나왔다. 페리는 ”옆방에 있던 밴드 멤버가 뛰어와 ’뭐냐, 다시 불러보라‘고 다그친 기억이 난다. 몇 달 뒤 세계인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프로듀서로 전향도 벼락처럼 일어났다. 페리는 ”당시 유행이라는 디지털 음악 소프트웨어를 장난삼아 뚱땅거리다 ’파티를 시작해, 토요일 저녁에‘ 같은 미국 팝의 클리셰 가사를 붙이고 놀았는데, 그 녹음이 우연히 큰 음반사에 전달됐다“고 했다. 20분 만에 만든 이 장난스러운 노래는 팝스타 핑크의 ’Get the Party Started‘(빌보드 싱글차트 4위)로 완성됐다. 페리는 섭외 1순위 작곡가가 됐다.

다음 의뢰인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Beautiful‘(빌보드 싱글차트 2위)은 아길레라를 처음 만난 날 페리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불러준 곡이었다. 페리는 ”피아노 앞에 앉아 ’난 아름다우니까/남들이 뭐래도‘라는 노래를 읊었는데 크리스티나가 그 곡을 원해 당황했다“고 했다.

”이런 자조적인 슬픈 곡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아. 넌 진짜로 예쁘니까“라고 했지만 며칠 뒤 아길레라는 페리의 집을 찾아왔다. 그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Beautiful‘의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페리는 깨달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도 내면으론 앓고 있다.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생각지 않는구나!‘

페리는 그때부터 ’송 닥터‘로 불리기 시작했다. 팝스타의 영혼을 치유해 노래로 길어 올리는 작곡가라는 뜻. 페리는 내한해 케이팝 회사들과 미래 협업에 대해 논의했다.

”케이팝은 퍼포먼스와 이미지가 놀라워요. 세월을 초월하는 노래의 힘까지 얻는다면 어떨까요. 10년, 15년 뒤에 케이팝이 영속성 있는 음악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요?“

페리는 ”앞으로 블랙핑크, NCT, 마마무, 트와이스 같은 그룹의 곡을 써보려 한다“고 귀띔했다.

”한국인의 열정에서 미국 음악 산업의 대안적 청사진을 봐요. 롤링 스톤즈, 레드 제플린은 여전히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죠. 수십 년 뒤 그래미 평생공로상은 누가 받게 될까요?“

임희윤기자 im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