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헬리콥터 맘에 관한 불편한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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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교육열이라면 중국도 뒤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스카이캐슬 맘’이 맹활약하는 동안 중국에선 타이거 맘을 체험하는 게임 ‘중국 부모’가 대박을 냈다. 젖먹이 아이를 키워 피아노 수영 코딩 학원에 보내고 성적을 관리해 대학 입시를 치르게 하는 게임이다. 게임을 즐기는 10, 20대들은 타이거 맘이라면 질색일 텐데 막상 부모 입장이 돼 보고선 “엄마가 왜 그랬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고 한다.

자녀 주변을 빙빙 도는 헬리콥터 맘이나 무섭게 닦달하는 타이거 맘은 모두 비교육적인 양육법으로 지탄받는다. 하지만 효과는 있다는 경제학자의 책이 나왔다. 미국 예일대와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쓴 ‘사랑, 돈, 양육: 양육법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이다. 뉴욕타임스는 ‘헬리콥터 양육에 관한 나쁜 뉴스’라며 책 내용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선진국 15세 학생들의 201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와 부모의 양육 방식을 분석한 결과 ‘빡센(intensive)’ 양육법으로 길러진 아이들의 성적이 더 좋았다. 학력 수준이 비슷한 부모들만 놓고 분석해도 결과는 같았다. 대학을 나오든 아니든 월급 차이가 크지 않았던 1970년대는 방임형 부모가 많았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임금 격차가 커지면서 헬리콥터 맘이 등장했다. 어린 시절 자유롭게 자라난 미국의 중산층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에겐 이전 세대보다 매주 12시간을 더 쓰기 시작했다.

저자들은 빡센 부모를 다시 독재적인(authoritarian) 유형과 권위 있는(authoritative) 유형으로 구분하고 후자가 더 효과적이라고 썼다. 독재적인 부모는 지시하고 매도 든다. 권위 있는 부모는 아이가 옳은 방향으로 가도록 설득한다. 권위 있는 부모의 자녀는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존감이 높고 마약이나 술 담배를 하는 비율도 낮았다.

한국 전문가들의 견해도 비슷하다. 본보는 2016년 초등학교 고학년을 둔 부모들의 양육법에 관한 특집을 보도했다. 학자들은 ‘서울 의대’라는 목표치를 제시하고 닦달하는 헬리콥터 맘도 나쁘지만 기대치를 표현하지 않고 무조건 아이의 자율에 맡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아이들에겐 인정 욕구가 있고 100% 내부의 동기만으로 공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김희정 한국교원대 교수). 특히 성취욕구가 강한 알파걸은 “스카이가 아니어도 된다”는 말에 오히려 상처를 받을 수 있다(이윤주 영남대 교수).

이제 효과가 입증됐으니 다들 헬리콥터 맘, 아니 권위 있는 부모가 되는 일만 남은 걸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부모 되기가 어디 쉬운가. 넘치게 주고 싶어도 가난해서 모자라게 주고 미안해하는 부모들은 더 많다. 헬리콥터 맘들은 대학입시가 끝나도 끼리끼리 계속 만난다. 입시를 치르며 싹튼 전우애 때문이지만 만나다 보면 인턴이나 취업에 유용한 정보를 주고받게 되고 아이들에게 더욱 튼튼한 사다리를 놓아주게 된다. 헬리콥터 맘이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헬리콥터 부모의 실패로 끝났다. 게임 ‘중국 부모’는 현실적이다. 아이가 대학입시를 치르면 게임은 끝나는데 새로운 게임은 이전의 자녀가 따놓은 점수에서 시작한다. 첫 세대의 입시 성적이 엉망이면 다음 세대는 점수 따기가 더 힘들어지고, 반대로 베이징대 합격 점수를 따놓고 끝나면 다음 세대부턴 수월해진다. 이 게임으로 여덟 세대를 키워본 게이머가 말했다. “단거리 달리기인 줄 알았는데 끝나지 않는 계주임을 깨달았다.” 헬리콥터 양육법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불편한 이유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헬리콥터 맘#스카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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