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전 박정희-카터 주한미군 철수 설전… 美 외교기밀문서 공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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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한국 국방비로 GNP 5%밖에 안써”, 박정희 “北처럼 20%쓰면 폭동 일어날것”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1979년 6월 서울을 공식 방문해 청와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당시 두 
정상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의 인권 문제 등을 놓고 설전을 벌였던 사실이 최근 공개된 미국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동아일보DB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1979년 6월 서울을 공식 방문해 청와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당시 두 정상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의 인권 문제 등을 놓고 설전을 벌였던 사실이 최근 공개된 미국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동아일보DB
“북한은 국민총생산(GNP)의 20%를 국방비로 쓰지만 한국은 5%를 쓴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우리가 GNP의 20%를 국방비에 쓴다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박정희 전 대통령)

1979년 6월 30일 청와대에서 단독 회담을 가진 한미 정상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한국의 인권 문제를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패전한 후 반전 여론이 확산되자 주한미군 철수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카터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을 만나서도 미군 철수를 공론화했다. 박 전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문제에 이어 유신 치하의 한국 인권 문제를 거론하자 “모든 국가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순 없다”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역사상 가장 ‘살벌했던’ 한미 정상회담 중 하나로 꼽히는 이날 회담 내용은 사단법인 한미클럽이 25일 미 존스홉킨스대 제임스 퍼슨 연구원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미 외교 기밀문서를 통해 40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 박정희 “주한미군 영구 주둔 불가하다는 것 안다”

카터 전 대통령 취임 직후였던 1977년 7월 한미는 연례안보협의회(SCM)를 열고 철수 초기 일정까지 합의하는 등 주한미군 철수는 시간문제였다. 2년 뒤 방한한 카터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란 공약 이행을 강하게 압박했다.

박 전 대통령은 “나는 미군이 한국에 영원히 주둔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미군이 언젠가는 철수해야 하겠지만 북한이 현재 우리보다 우월하며 그들의 (대남)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며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했다. 그러자 카터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병력 규모를 동결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군 군사력 증강 시간표를 제시하면서 “북한이 (대남 적대시 등의) 정책을 바꿀 때까지는 미 2사단 주력 부대가 한국에 남고 한미연합사령부가 계속 유지되기를 솔직히 희망한다”고 설득했다.

한미 정상의 공방은 방위비 분담 이슈로 번졌다.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의 방위비에 비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이 적다고 지적하자 박 전 대통령이 “북한은 그렇게 할 수 있어도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버텼다. 이후 논의가 이어지면서 카터 전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처럼) GNP의 20%를 방위비로 쓸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고, 박 전 대통령도 방위비 증가 의사를 밝히면서 가까스로 논란이 봉합됐다.

○ 카터 “긴급조치 9호 철회할 수 있나”

카터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철회해달라고 계속 요구하자 한국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대선 과정에서 ‘인권 대통령’을 내세우기도 한 그는 “한국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태도에 있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권 분야”라면서 “내 개인적인 바람은 당신이 긴급조치 9호를 철회하고 재소자들을 가능한 한 많이 석방하는 것”이라고 했다. 1975년 선포된 긴급조치 9호가 인권을 심히 제약하는 것을 박 전 대통령의 면전에서 쏘아붙인 것이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안보를 위협받는 나라와 안보를 위협받지 않는 나라에 똑같은 (인권)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며 “(일부) 사람들은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 하고 있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한 당신의 우려를 이해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2007년 비밀해제된 미 국무부 문서에서도 카터 전 대통령 방한 당시 부인인 로절린 카터 여사가 대통령 부인 역할을 수행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나 한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려 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바 있다.

한편 미국이 당시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남북미 3자 고위급 회담 개최를 극비리에 추진한 사실도 이날 공개됐다. 1979년 6월 카터 전 대통령이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당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인도네시아가 남북미 고위급 회담 장소를 제공하기로 결정해 준 데 대해 사의를 표한 것. 앞서 1977년 8월 5일 카터 전 대통령의 외교 책사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메모에서 “유엔 사령부 문제, 기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미 3자 논의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올해 내내 종전선언 채택 등을 위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40년 전에도 미국 주도로 3자 정상회담을 모색했다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하지만 당시 북측이 호응하지 않으며 40년 전 남북미 정상회담은 불발됐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박정희-카터#주한미군 철수 설전#미 외교기밀문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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