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6개월간 해외현장 다니며 ‘4대 미래사업’ 직접 선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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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180조 투자 발표]신성장 동력 제시, 이건희 이후 8년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 복귀 45일 만인 올해 3월 유럽과 캐나다로 출장을 떠났다. 4차 산업혁명을 필두로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는 인공지능(AI) 현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는 게 목적이었다.

8일 삼성이 3년간 25조 원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AI △5세대(5G) 통신 △바이오 △전장(電裝)부품 등 ‘4대 미래 성장사업’은 이 부회장이 지난 6개월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직접 그린 밑그림이다. 이 부회장은 5월 중국에서 BYD 등 현지 전기자동차 생산업체들을 방문했고, 6월에는 일본에서 우시오전기, 야자키 등 자동차 부품사들과 만났다. 인도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직후에는 유럽으로 떠나 전장부품 사업을 점검했다.

재계는 2010년 5월 이건희 회장이 △발광다이오드(LED)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의료기기 △바이오·제약 등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한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삼성이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시한 데 주목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자신의 색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 부회장이 삼성의 새로운 총수로 지정된 후 본격적인 경영철학과 방향성을 제시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 ‘삼성의 미래’ 달린 4차 산업혁명 기술

4대 성장 사업 중 AI와 5G, 전장부품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이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관건인 제조업과 달리 핵심 인력과 기술을 먼저 확보하는 선제 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4대 미래사업에 투입할 25조 원 외에 3년간 해외에 투자하기로 한 50조 원 중 상당액도 미래사업 관련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에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마존이나 구글 등 경쟁사에 비해 다소 AI 시장 진입이 늦었다고 평가받던 삼성은 이 부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5월 한국 AI센터를 중심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 영국 케임브리지, 캐나다 토론토, 러시아 모스크바에 AI 연구거점을 세우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0년까지 AI 분야 인재 1000명을 확보한다고 발표한 직후 AI 분야 세계 석학들을 잇달아 영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5G는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IoT), 로봇, 스마트시티에 필수적인 인프라다. 상용화할 경우 2025년 이후 기대되는 경제적 파급 효과만 연간 최소 30조 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를 계기로 미국과 일본 시장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2015년 12월 전장사업팀을 신설한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전장업체인 하만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강점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정보통신기술을 자동차에 확대 적용해 자율주행 시스템 반도체 등 미래 전장부품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목표”라고 설명했다.

바이오는 4대 성장 사업 가운데 유일한 비(非)전자 사업이라 눈길을 끌었다. 삼성은 2010년 삼성서울병원 지하 실험실에서 12명의 인력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래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 사업으로 집중 육성해왔다. 바이오시밀러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 6∼7년간 2000억 원의 개발비가 들어갈 정도로 바이오는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삼성은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 2012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하며 사업을 확장해왔다.

이 부회장은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 간담회에도 삼성전자 이외의 계열사 사장으로는 유일하게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을 참석시킨 바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바이오 사업 육성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그널이라는 내부 평가”라고 전했다.

○ 中 ‘반도체 굴기’ 누를 ‘기술 초격차’

국내에 투자하기로 한 130조 원 중 대부분은 반도체 사업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정부 주도로 대대적으로 추진 중인, 이른바 ‘반도체 굴기’에 대응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앞서 삼성전자는 올해 2월 경기 평택 반도체단지에 제2 생산라인을 증설해 짓는 계획을 확정했다. 평택 내 최첨단 반도체 공장 1개 라인을 짓는 데는 약 30조 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 사업도 중국 등의 대량 물량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고부가·차별화 제품 관련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발표에 앞서 올 초부터 주요 경영진이 모여 지속 가능한 투자인지, 실현 가능한 투자인지 진정성을 놓고 다양한 논의를 거쳤다”며 “세부 내용들은 7월 31일 열린 이사회에 사전 보고됐다”고 말했다.

투자에 따른 고용유발 효과도 엄청나다. 국내 디스플레이와 반도체에 대한 130조 원 투자에 따른 고용유발은 40만 명, 생산에 따른 고용유발은 30만 명 등 간접고용 인원 규모도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이재용#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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