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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이코노미쿠스’가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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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이코노미쿠스’가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박선희 기자입력 2018-06-01 15:09수정 2018-06-0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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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경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피터 플레밍 지음·박영준 옮김
440쪽·1만6800원·한스미디어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 불을 밝히며 밤늦게까지 일하지만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왜일까. ‘호모 이코노미쿠스’ 저자는 “더 많은 소비와 축적을 위해 관습적으로 일하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동아일보 DB

‘만리장스펙’(만리장성만큼 긴 스펙)을 쌓기 위해 청춘을 바치는 취업준비생, 대출과 부채에 허덕이는 중산층,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가장 오래 일하는 과로사회….

한국 앞에 놓인 이런 어려움들은 다양한 질문을 낳는다. 열심히 일해도 삶의 여건은 왜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까. 왜 경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치열해지는 걸까.

부의 편중과 양극화 심화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비단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현대 노동정책을 연구해 온 런던시립대 경영대 교수가 쓴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길고 암울한 보고서다.


저자는 금융위기 발생 전후인 2006~2008년 경 세계 각국의 근로 환경과 부의 분배가 어떤 식으로 악화되기 시작했는지 수많은 사례를 중심으로 짚어나간다. 예를 들어 기업 경영진이 받는 소득은 지난 10년간 80% 증가했다. 2017년 영국 기준 평균 근로자 최저 임금의 386배까지 치솟았다. 저자는 경영진 보수는 “임대료와 같은 개념”이 됐다고 지적한다. 경영성과나 회사의 지속성과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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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편법으로 부를 증식시키는 방법은 갈수록 교묘해진다. 구글은 법의 허점을 이용한 조세회피 방식으로 아일랜드에서 220억 유로(약 27조72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세금은 고작 0.21%의 세율에 불과한 4700만 유로(약 592억 원)를 냈다. 조세회피는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에게 만연한 형태다. 그 피해는 자연히 간접세, 소득세 형태로 평범한 시민에게 되돌아온다.

공유경제의 어두운 면도 꼬집는다.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새로운 플랫폼 비즈니스는 첨단의 기술적 혁신으로 주목받는다. 원할 때, 자유롭게 일함으로써 노동의 새로운 미래를 정의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저자의 평가는 신랄하다. 소위 ‘공유경제’란 개념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새로운 기업들은 “고용에 따른 모든 부담을 노동자 개인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사회적 퇴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보 기술의 발전이 사회 불평등을 해결할 것이라는 낙관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강한 제동을 건다. 공유경제의 ‘개인화된 노동’은 근로자가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권익을 주장하는데 매우 취약한 형태다. 세계 곳곳에서 우버 근로자의 지위를 놓고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근로자는 그들이 ‘영구적 직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버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주류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인간상이다. 합리적이며 목표에 따라 동기를 부여하고 성과 지향적인 인간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부가 극히 일부에 편중돼 상속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람과 동기를 찾을 수 없는 공허한 노동에 시달리는 오늘날 이런 ‘이상적인 인간상’은 허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주류경제학은 죽었다’는 급진적 주장이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를 일별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와 통계자료 덕분에 비교적 차분하게 읽힌다. 저자는 제 역할을 상실해가고 있는 ‘공공 영역’을 회복하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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