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6〉‘광장’으로부터의 해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여기에 한 젊은이가 있다. 그는 나라가 둘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던 전쟁에서 포로가 된다. 전쟁이 끝나지만 진퇴양난이다. 자신이 온 곳으로 돌아가자니 “제국주의자들의 균을 묻혀 가지고 온 자”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고초를 겪을 일이 두렵고, 그렇다고 이곳에 남자니 이곳은 이곳대로 정치 현실이 마땅찮다. 그때 하늘에서 내려오듯 “난데없이 밧줄이 내려온”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곳을 택할 자유의 밧줄. 그는 밧줄을 잡고 중립국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그런데 나라를 버리고 가는 마음이 어쩐지 허전하다. 자유의지로 택한 “희망의 뱃길, 새 삶의 길”이니 홀가분해야 되는데 “왜 이렇게 허전한가”. 결국 그는 그 허전함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든다.

‘그’는 분단의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 청년의 고뇌와 절망을 그린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다. 남한에 살다가 아버지가 월북하는 바람에 고초를 겪다가, 월북하여 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포로가 된 청년, 그가 중립국으로 가겠다고 떠난 지 6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분단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그가 “살았던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정치적 구조 속에 여전히” 살고 있으며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 허무적인 소설을 여전히 읽고 들여다보는 이유인지 모른다.

‘광장’의 주인공이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맺어진 포로송환협정에 따라 중립국을 택한 것은 1953년 판문점에서였다. 65년이 흐른 2018년 4월 27일, 그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대표가 만나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선언했다.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광장’의 이명준이 대변하는 절망과 허무,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더 많은 고뇌와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렇게만 된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일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최인훈#소설 광장#분단의 현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