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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700명 전원에 개인 연구실… 인재들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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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700명 전원에 개인 연구실… 인재들이 몰려왔다”

김유영 기자 입력 2018-03-07 03:00수정 2018-03-0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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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연 티맥스소프트 회장
박대연 티맥스소프트 회장이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사옥에서 노트북을 들고 웃고 있다. 직원들에게 ‘회장님’이 아닌 ‘교수님’으로 불리는 그는 직원들과 맞짱 토론을 하면서 20여 년째 토종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성남=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건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가질 법한 로망이다. 임원은 돼야 개인 사무실이나 연구실이 생기는 법. 하지만 갓 들어온 신입에게도 개인 공간을 주는 회사가 있다. 기업용 소프트회사인 티맥스소프트다.

이곳은 1997년 설립 후 20년 넘게 ‘연구원 1인 1실’ 원칙을 지키고 있다. 연구실에 들어서면 각종 수식이나 프로그램 명령어가 빽빽하게 적힌 유리로 된 칠판이 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간이침대, 덤벨, 세계지도, 조립장난감 등 연구실별로 각양각색이다. 회사는 집도 내어준다. 연구원들은 주상복합이나 중대형 아파트를 함께 쓴다. 희망자에게 모두 집을 제공해 회사 총무팀은 전세 계약 맺기에 바쁘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 덕분인지 올해 신입 연구원 150명 중 100명은 서울대와 KAIST 출신일 정도로 인재들이 몰렸다.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 있는 15층짜리 사옥은 회사라기보다 공대 캠퍼스 같은 분위기다. 창업자인 박대연 티맥스소프트 회장(62)도 사내에서 ‘교수님’으로 불린다.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10시 반까지 일하는 그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라클, IBM 등에 맞서 토종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티맥스소프트는 현재 연매출 1000억 원 규모로 외국산이 장악했던 웹애플리케이션서버(WAS) 시장에서 10년째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티맥스소프트 사옥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 야간 상고 다니면서 운수회사 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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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남 담양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빚보증을 잘못 선 아버지 때문에 가세가 기울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야간 중학교를 다니면서 운수회사 사환으로 일했다. 하지만 공부를 해야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광주상고 야간부에 진학한 그는 성적이 좋아서 한일은행 특채로 입사해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은행 본점 전산실에서 낸 공고가 미래를 바꿔 놓았죠. 당시까지만 해도 컴퓨터를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는데 컴퓨팅 기초지식부터 메인프레임 시스템 실무까지 하나하나 배워나갔죠.”

그 사이 막내 동생까지 대학을 졸업시켰다. ‘인생 과업’을 마친 그에게 또 하나의 의욕이 솟구쳤다. 이제는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었다.

결국 1988년, 32세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은행 퇴직금 1300만 원만 달랑 들고 미 오리건대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 매월 100달러 이상 쓰면 안 됐기에 최대한 빨리 졸업해야 했다.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수술 후 며칠간 입원해야 했지만 수술 직후 바로 퇴원해 수업을 들은 적도 있었다. ‘독하게’ 공부한 덕에 3년 만에 전 과목 A학점으로 학·석사과정을 끝냈다. 바로 남캘리포니아대 박사과정을 밟아 최우수 졸업논문상을 받으며 박사가 됐고 한국외국어대 제어계측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은행에 근무했을 때나 미국에서 공부했을 때 IBM처럼 외국 기업들이나 만들 수 있던 핵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 없었어요. 교수가 되고 바로 창업에 나섰죠.”

○ 토종 소프트웨어 개발하겠다는 꿈

외환위기 직후였지만 1997년 박 회장은 티맥스소프트를 설립했다. 그러다 KAIST 교수 모집 공고를 접했다.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지원서를 냈다.

“상고 출신인 데다 마흔 살이 넘은 저를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던 학과장님 표정이 잊혀지지 않아요. 다행히 최우수 논문을 쓰고 단기 졸업했다는 사실을 설명해 임용될 수 있었지요. 감사한 기회였죠.”

그는 학교가 있는 대전과 회사가 있는 분당을 오가면서 미들웨어(OS와 응용프로그램을 연결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했다. 외국산에 대항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목표였다. 2003년 웹 환경에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WAS인 ‘제우스’를 내놓았다. 외국산보다 비용을 40% 이상 낮추면서도 비슷한 성능을 구현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처음에는 국산이란 이유로 제품 설명 기회조차 거절당했죠. 교수라도 소용없었어요. 그러던 중 국방부 제품성능시험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됐고 기술력을 인정받았어요. 당시 실적을 바탕으로 국내 금융회사나 공공기관에 납품하기 시작했죠.”

제우스는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가 우수 제품을 엄선하는 ‘매직 쿼더런트 모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창업 후 10년 뒤인 2007년 결국 교수직을 관뒀다. 그는 “창업은 인생을 건 싸움”이라며 “처절하고 절박해야 기업을 할 수 있는데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창업까지 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에게는 외국산을 밀어낸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찬사가 붙었다. 하지만 다시 부침을 겪었다. 연구보다는 마케팅과 세일즈에 힘을 실어 무리한 확장을 한 게 화근이었다. 결국 2010년 6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직원 2100명 중 1500여 명을 내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일부 사업부는 삼성SDS에 매각했다.

“이참에 회사 전체를 매각하려고도 했었죠. 막 은퇴를 결심하려던 시점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좋은 신호가 감지됐어요. 농협이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티맥스 살리기 운동 비슷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어요.”

2011년 미들웨어 부문에서 흑자가 났다. 제우스 판매량은 오히려 전년 대비 30% 늘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201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매달리기로 했다.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그는 최고기술경영자(CTO) 역할에 충실했다. 그 덕분에 8개 분기 연속 흑자를 거두고 3년 예정이었던 워크아웃을 1년 앞당겨 조기 졸업했다.

○ 직원들과 논문 심사에 가까운 맞짱 토론

현재 박 회장은 일주일 내내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10시 반까지 꼬박 일한다.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이나 연휴도 예외는 아니다. 밥은 주로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결혼도 안 했다. 영화 본 지는 35년 된 것 같다고 했다. 매월 200km 정도 달리는 게 유일한 취미다. 매년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3시간38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에서 박 회장 모습은 교수에 가깝다. 강의에 나서기도 하지만 매일 같이 하루 6팀의 기술 시연 발표를 듣고 ‘맞짱 토론’을 한다. 박 회장과 실장, 팀장 등 5, 6명이 참석한다. 회사 프레젠테이션이라기보다는 논문 심사에 가깝다.

독특한 토론 철칙도 있다. 연구원은 칠판에 쓸 수도 없다. 자료도 가져올 수 없다. 말로만 설명해야 한다. 모두 자신의 지식으로 숙지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일주일에 30팀이 하니 1년이면 1500팀이 발표하죠. 연구원이 현재 700여 명이니까 연구원 1명당 연간 두 차례 정도 발표합니다. 신입도 예외는 아니에요. 소프트웨어는 한 치의 오류라도 발생하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데, 직급 상관없이 의견을 나눠야 오류를 줄일 수 있죠.”

‘연구원 1인 1실’을 고수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연구원들의 자존심을 살리고 이들이 대접받는 느낌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이를 방지하는 게 낫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티맥스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에도 기꺼이 응한다. 직원들을 제자로 여기는 그는 이들이 자퇴(퇴사)해도 안 잡는다. 바로 사표를 수리한다. 이렇게 해서 티맥스 출신 직원이 창업한 기업이 블록체인 스타트업 등 10여 개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1000억 원. 2014년 800억 원, 2015년 904억 원, 2016년 993억 원 등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는 1200억 원이 목표다. 전체 인력 70% 이상이 기술 인력으로 연매출의 2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쓰고 있다. 제우스도 삼성전자, 신한카드, SK텔레콤, 인천공항 등에 공급되고 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이 43.7%(2017년)로 오라클(28.4%)과 IBM(21.3%)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 “소프트웨어에 인생 걸었다” 묘비명 남기고파

박 회장은 또 다른 목표가 있다. 소프트웨어 중 가장 난도가 높은 것으로 꼽히는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을 개발하는 것. 이는 데이터베이스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주는 시스템이다. 국내에서 티맥스 점유율은 아직 4% 선이고 여전히 오라클이 선두인 점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과점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무모한 도전’을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벤처란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장 돈 벌기 쉬운 애플리케이션이나 게임 등을 개발하는 건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기술이 앞설수록 과점 기업만 남게 되는데, 거꾸로 우리가 그 시장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엄청난 기회가 되는 거죠.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개발에 계속 매달려 온 만큼 그게 바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 이후 기업공개(IPO)도 계획하고 있다. 기술 개발에 투자 여력을 높이고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계획도 세웠다. 일명 ‘티맥스 공과대학’이다.

“저는 죽을 때까지 교수라는 직업을 유지하는 걸 보람으로 여기고 싶어요. 학교를 세우려면 돈도 많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가족이 없잖아요. 하하하.”

묘비명으로 ‘소프트웨어에 인생을 걸었다’를 남기고 싶다는 그는 직원들과의 맞짱 토론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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