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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헌재]도핑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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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헌재]도핑과의 전쟁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입력 2017-12-12 03:00수정 2017-12-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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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오랜만에 만날 때마다 목소리가 굵어져 있어 깜짝깜짝 놀라요.” 2008 베이징 여름올림픽 여자 역도에서 금메달을 딴 ‘역도여제’ 장미란(34)이 선수 시절 했던 얘기다. 실제로 입문 몇 년 만에 세계적 선수가 된 한 외국 선수는 몰라볼 정도로 몸이 커져 있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전통적인 역도 강국 중국, 러시아 등은 지난해 국제역도연맹(IWF)으로부터 도핑을 이유로 국제대회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따라 위의 두 나라를 포함해 9개 나라가 이달 미국에서 열린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 선수들을 내보내지 못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역도가 정식 종목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주 국가 주도 도핑 스캔들의 중심에 선 러시아에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전면 출전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스포츠계에 만연한 도핑에 대해 확실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IOC 조사 결과 2014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러시아 선수 가운데 25명이 도핑으로 적발됐다. 박탈된 메달만 11개다. IOC의 징계에 따라 러시아 선수들은 국기와 국가를 사용하지 못한 채 개인 자격으로만 평창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 그것도 엄격한 도핑 테스트 통과라는 전제 조건을 달고서다.

도핑은 스포츠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반칙이자 범죄다. 하지만 IOC가 선포한 ‘도핑과의 전쟁’이 무색하게 도핑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왜 선수들은 자신의 신체와 미래를 한순간에 망칠 수 있는 ‘악마와의 거래’를 끊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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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내 엘리트 체육인들과 가진 모임에서 이유를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정말 걸리지 않는 약물이 있다면 올림픽 메달을 위해 복용할 생각이 있는가”란 질문에 참석한 10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약물 때문에 수명이 줄어들 수 있는데도 복용하겠는가”라는 질문에도 2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을 정도로 절실한 선수들이 적지 않단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면 도핑은 나쁜 것이라든지, 스포츠맨십에 벗어난다든지 하는 식의 교육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최근 IOC의 움직임에는 확실한 메시지가 하나 있다. “도핑은 하늘 끝까지라도 추적해서 잡아낸다”는 것이다. 예전엔 도핑을 해도 해당 대회만 넘기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시료를 끝까지 보관해서 두고두고 재검사를 한다. 예전 같으면 100ng(나노그램·1ng은 10억 분의 1g) 이상이 검출돼야 적발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1ng만 있어도 된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와 2012 런던 올림픽 때 넘어갔던 도핑이 요즘 적발되는 이유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도핑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전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도 결국 ‘약쟁이’로 추락했다. 암스트롱의 시료에서는 결국 금지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반도핑기구는 전 동료들의 증언, 약물 공급 담당자와 주고받은 이메일, 금융결제 기록 등을 토대로 도핑 사실을 확인해 냈다. 그가 쌓아올린 ‘사이클 황제’로서의 모든 기록은 영원히 삭제됐다.

도핑 기술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 변형을 통한 ‘유전자 도핑’이나 뇌를 자극해 운동 성과를 높이는 ‘브레인 도핑’까지 등장했다. 이를 막기 위한 반도핑 기술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도핑을 추적하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듯이 영원히 적발되지 않는 도핑도 없다.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uni@donga.com


#장미란#도핑#국제올림픽위원회#ioc#러시아 도핑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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