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종대]‘未知 포비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1957년 말 미국인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공포에 휩싸였다. 96분마다 미국인 머리 위로 옛 소련이 쏘아 올린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지나갔다. 당시 많은 미국인들은 스푸트니크가 수소폭탄을 떨어뜨릴 표적을 찾아 미국을 샅샅이 정찰하고 있다고 믿었다. 1952년 미국이 수폭 실험에 성공했고 이듬해 소련도 성공해 따라붙은 상태였다. 스푸트니크가 실제 뭘 하는지 몰랐다는 점이 미국인 공포의 주요 원인이었다.

▷2003년 4월 하순 중국 당국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하자 베이징시 외곽을 봉쇄했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막일꾼)은 며칠 새 모두 베이징을 탈출했다. 환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 한 감염 위험성이 작았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전 세계 774명의 사스 사망자 중 중국이 가장 많았지만 중국 정부는 실태 공개보다 파장 축소에 급급하다 불신을 키웠다. 그해 중국의 2분기 성장률은 1분기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살충제 계란에 이어 간염 바이러스 소시지, 발암물질 생리대까지 드러나면서 우리나라도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증인 ‘케미포비아(chemi-phobia)’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계란값은 30∼40% 폭락했고 생리대는 면제품의 인기가 치솟는 가운데 해외 직구도 크게 늘었다. 여성환경연대가 최근 생리대 피해 제보 3009건을 분석한 결과 여성들은 생리주기 불순과 생리량 감소, 생리통 악화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위험이나 불안을 과도하게 느끼고 이를 피하려는 증상을 포비아(공포증)라 부른다. 그리스 신화의 두려움과 공포의 신(神) 포보스(Phobos)에서 나온 말이다. 살충제 계란이나 ‘발암 생리대’ 사태에서 보듯 적당한 공포는 개인을 위험에서 지켜주고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과도한 공포는 개인과 사회에 커다란 비용을 초래한다. 포비아의 가장 큰 원인은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미지(未知)에 대한 공포다. 사태의 원인과 진단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사회적 공포를 줄이는 첩경이다.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
#중국 사스#살충제 계란#간염 바이러스 소시지#발암물질 생리대#케미포비아#chemi-phobia#미지에 대한 공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