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정동]싱가포르와 홍콩, 두 도시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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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닮은꼴 두 무역관문, 글로벌 금융위기 거치며
싱가포르 성장·고용, 홍콩 추월
결정적 원인은 산업구조 차이
고부가가치 소프트산업에도 제조업 강화·혁신 반드시 필요
푸드트럭 같은 창업정책으로는 글로벌 유리알체질 만들뿐이다

이정동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이정동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경제성장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찰스 디킨스의 고전소설 ‘두 도시 이야기’ 제목을 빌려서 글자 그대로 두 도시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홍콩과 싱가포르도 그중 하나다. 둘 다 1970년대 이래 눈부신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이들은 항구도시로서 아시아의 무역 관문을 자처해 왔고 영어가 잘 통하고 개방적 제도를 채택하는 등 유사한 점이 많다. 물론 주변 환경이나 산업 정책의 주안점 등 다른 면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의 원인을 찾으려는 연구자들에게는 구하기 힘든, 좋은 비교 샘플이 된 셈이다.

흥미롭게도 2000년대 이후,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두 도시의 성과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싱가포르가 금융위기 이후 연평균 6%대의 성장률을 보이는 동안 홍콩은 평균 4%대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등락하면서 고전하고 있다. 실업률, 특히 청년실업률도 홍콩과 달리 싱가포르는 거의 완전고용 수준이다.

그 결과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싱가포르가 어느새 홍콩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홍콩과 비교할 때 인구로는 75%, 땅 면적으로는 67%에 불과한 더 작은 도시 싱가포르가 전체 경제 규모에서 이웃 홍콩보다 더 큰 거인이 된 셈이다. 수년 전 홍콩 거리를 메웠던 우산혁명의 이면에도 실은 이런 경제 침체 분위기 아래서 미래를 가늠하지 못하는 홍콩 청년들의 암울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때 아시아의 용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던 두 도시가 이처럼 다른 경로를 밟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결정적인 것은 산업구조의 차이다. 싱가포르는 1970년대 이래 꾸준히 20∼30%대의 제조업 비중을 유지해 온 반면 홍콩은 그 비중을 80년대 23% 수준에서 최근 3% 이하로 계속 줄이며 의도적으로 탈(脫)제조업화를 지향했다. 그 빈자리에 이른바 소프트산업인 금융과 기타 서비스산업을 키웠다.

반면 싱가포르의 제조업은 석유정제, 정밀화학, 전자부품을 넘어 최근 나노와 바이오산업으로 진화했고 그러면서 임금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냈다. 안타깝게도 홍콩이 역점을 둔 금융과 물류, 서비스는 경기 변동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연봉이 높은 소수와 대다수 저임금 근로자가 공존하는 전형적인 할리우드형 경제체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1980년대 전 세계적으로 임금을 포함한 투입 비용이 상승하기 시작하였을 때 싱가포르는 기술 혁신에 방점을 두고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대응했다. 하지만 홍콩은 대륙의 저임금을 찾아 공장을 옮기고 대신 이를 지원하는 금융과 서비스를 집중 육성하는 소프트화 전략을 채택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전략적 선택의 차이가 결국 오늘날 한 도시에서는 일자리를, 또 다른 도시에서는 우울한 미래를 낳은 것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첨단제조 2.0 프로그램이나 도널드 트럼프의 제조업 유치 노력, 독일의 산업 4.0 슬로건도 따지고 보면 모두 제조업 강화를 위한 전략이다. 일본도 제조업 강화의 물결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제조업을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육성하지 않고서는 고용 창출, 물가 안정, 무역 흑자, 나아가 기술 혁신 등 그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반영한 결과다. 이른바 소프트한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제조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한국을 휩쓴 가벼운 창업의 분위기를 타고 아직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하룻밤 대박을 꿈꾸는 창업가들의 이야기가 회자되고, 정책적으로도 서비스업 육성을 위한 각종 대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일자리가 급하니 일손이 많이 필요한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게 틀린 말이 아니고, 앱 개발이나 푸드트럭처럼 문턱 없이 누구라도 손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산업 발전의 큰 지향점은 기술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제조업에 두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을수록 세계 경기에 민감하기 마련인데 여기에 제조업 비중이 더 줄어들게 되면 조그만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사실상 앓아누워야 하는 유리알 경제 체질이 되기 십상이다. 세계의 은행을 자처하던 아이슬란드가 며칠 사이에 사실상 파산 지경에까지 몰리는 것을 본 것이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다. 국가 경제의 지향을 첨단 제조업 육성에 두고 인재 육성, 금융체제, 사회간접자본 확보, 지역 개발, 노사 관계, 인력 공급, 혁신 지원 등 모든 정책이 서로 조화되도록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이정동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싱가포르 제조업#홍콩 청년실업률#제조업 강화#제조업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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