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진현]핵에 포위된 한국의 실체 직시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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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실패’ 반동으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 높아져
문명사적 도전에 직면한 한국, 군사지정학적 위험밀도 역시 한반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주변 4강이 함부로 못할 힘…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문재인 대통령의 등장은 우리 정치사에서 큰 변곡점을 찍었다. 당선 이후 20여 일간의 행보는 그를 바라보는 몇 가지 편견을 제거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제2의 노무현이 아니라 보수·진보 20년을 뛰어넘겠다는 선언도 바로 봉하마을 부엉이바위 아래의 노무현 묘소에서 했다. 이 말이 순정 촛불뿐 아니라 순정 태극기까지 포용 극복했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촛불 광화문’,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 시대, ‘광화문 마이크’라는 용어의 연결이 주는, 마치 개국=천도 같은 이미지 낳기에도 신선미를 더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 가능성에 88%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 지지층에서도 긍정 57%, 부정 27%였다. 건국 이후, 어쩌면 19세기 한말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에 대한 기대, 성공 가능성이 이렇게 높다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두 가지 글이 떠오른다. 하나는 1960년 미국 역사상 최연소 최초의 가톨릭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에 대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커버스토리다. 첫 문장이 ‘케네디의 최대 부담은 그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였다. 두 번째는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한국 정세를 해설하면서 붙인 ‘문재인 후원회장 박근혜’라는 제목이었다. 문 대통령 당선 드라마의 시작에서 끝까지 사실상의 연출자는 박 전 대통령임이 분명하다. 문 대통령 기대의 한 축은 박근혜 실패의 반동이고, 또 한 축은 20여 일간의 성공적 연출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문 대통령을 기다리는 것은 기대가 아니라 문명사적, 지정학적 도전에 직면한 한국의 냉혹한 실존적 실체다. 인구·가족 구조변화, 재정·산업·고용 구조개혁, 생명자원(에너지, 먹거리)의 절대부족, 기후변화 그리고 국가안위라는 실체다.

한국은 군사지정학적 위험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스웨덴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2016년 세계 전체 군사비 1조6860억 달러 중 한반도 주변 4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1조 달러에 이른다(1위 미국 6110억, 2위 중국 2150억, 3위 러시아 692억, 8위 일본 461억, 10위 한국 411억 달러).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평가한 군사력 순위에서는 1위 미국, 2위 러시아, 3위 중국, 7위 일본, 11위 한국, 북한은 23위다. 같은 SIPRI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무기 수출에서 미국 1위, 러시아 2위는 불변이나 중국이 프랑스 독일을 제치고 3위로 부상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모든 나라에서 국방비와 군사력을 일제히 늘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안에서는 북한 핵과 햇볕정책 간의 딜레마가 제일 중요한 것처럼, 그리고 문 정권과 촛불과 추락한 보수진영 간의 정리가 가장 긴절(緊切)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생존 실체, 생명 조건은 세계 최대 군사경쟁 핵심 지역, 세계 안보 문제군의 진원지에서의 삶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다. 휴전선이 세계 최대 군사밀집지역이다. 더구나 일본도 사실상 핵 무장능력을 기술적으로 완비한 나라이니 북한 핵을 포함해 세계에서 완전히 핵무력으로 포위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지구상 어느 나라도 사방이 핵 무장국으로 포위된 나라는 없다.

1990년대 이전까지 세계대전과 군사력의 중심은 대서양과 유럽이었다. 중국 인도의 등장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북핵으로 한반도는 21세기 군사지정학 최대 리스크 지역으로 변질되었다. 한국의 독자적 소프트파워 하드파워 자강으로 4강이 모두 우리의 친구가 되고 싶게 만들고 반격을 두려워할 만한 힘을 어찌 구축할 것이냐의 명제는 정권의 드라마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이 나라의 객관적 실체다. 한국에서의 평화운동도 시대 유행이나 남북 화해를 넘는 지구촌적 영성적 차원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역사는 국가의 실적으로 평가하지 정권의 인기로 평가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길은 자기배반의 어려움도 마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재에서 진단하면 문 정권마저 실패했을 때 이 나라는 기존의 보수로 대체되기보다는 거대한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극단의 원리주의, 포퓰리즘 폭력의 반동이 물결칠 것이다. 그리고 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의 한국 무시하기(passing)가 상승 작용해 막다른 비극을 부를 것이다. 문 정권에 실체에의 접근을 강조하며 성공을 간절히 비는 이유다.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문재인#존 f 케네디#북한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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