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가 떴다] ‘김병지 형’ 전북 김병우 의무 트레이너 “동생아, 우리 팀이 골 넣어도 마음껏 못 웃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5월 10일 05시 45분


한국 최고의 수문장으로 명성을 떨친 김병지(왼쪽)가 그의 형 병우씨가 서울 청담동의 커피숍에서 만나 두 손을 맞잡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스포츠재활센터를 운영하며 제2의 삶을 시작한 동생은 K리그 수원삼성을 거쳐 전북현대의 의무 트레이너로 활동하는 형님이 자랑스럽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한국 최고의 수문장으로 명성을 떨친 김병지(왼쪽)가 그의 형 병우씨가 서울 청담동의 커피숍에서 만나 두 손을 맞잡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스포츠재활센터를 운영하며 제2의 삶을 시작한 동생은 K리그 수원삼성을 거쳐 전북현대의 의무 트레이너로 활동하는 형님이 자랑스럽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영원한 축구인 형제 김 병 우·김 병 지

■ 베테랑 트레이너 형 김병우

네가 실점하면 괜스레 미안해 웃음 참았어
넌 관리가 철저했지…더 뛸 수도 있었는데
난 요즘 홍정남 같은 선수들 성공에 보람

■ 레전드 골키퍼 동생 김병지

그래도 몰래몰래 내게 파이팅 외쳐줬잖아
지금도 딱 3주만 주면 당장 뛸 몸 만들지
형은 K리그 우승만 9번…10번 채워야죠


김병지(47)는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축구 최고의 수문장이었다. 국가대표로도 깊은 족적(A매치 61경기 72실점)을 남겼지만, K리그에서의 활약은 더욱 대단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A컵 등은 차치하더라도 K리그 통산 706경기에서 골문을 단단히 지키며 명성을 떨쳤다. 축구계에선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친형도 사실상 축구인이다. 클래식(1부리그) 전북현대에서 활약 중인 김병우(52·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 이사) 의무 트레이너는 보건소 공무원으로서의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뒤로 한 채 오래도록 ‘K리그 식구’로 몸담고 있다. 1995년 수원삼성의 창단 멤버로 출발해 2010년까지 활동한 뒤 2011년 전북으로 옮겨 최강희(58) 감독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누구보다 길게, 그러면서도 아주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음에도 동생은 다섯 살 터울의 형님이 부럽다고 했다. 무수히 많은 우승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김 트레이너가 수원과 전북을 거치며 지켜본 리그 우승트로피만 무려 9개다. 2년에 1번꼴로 소속팀의 K리그 우승을 함께했다. 따뜻한 봄 햇살이 가득하던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김병우-병지 형제를 만났다.

한솥밥을 먹은 기억은 없지만 ‘K리그 식구’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전북현대의 김병우(뒤) 의무 트레이너가 동생 김병지를 끌어안고 미소짓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한솥밥을 먹은 기억은 없지만 ‘K리그 식구’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전북현대의 김병우(뒤) 의무 트레이너가 동생 김병지를 끌어안고 미소짓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축구인

김병우(이하 형)=병지가 선수로 있을 때는 종종 경기장에서 마주치며 짧게나마 대화를 나누는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허전해.

김병지(이하 동생)=그렇죠. 그 때의 감정은 참 독특했죠. 아마 부모님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요. 짚신 장사와 나막신 장사 아들들을 둔 기분? 서로가 같으면서도 다른 길(승리)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래도 못할 말이 많지 않은 지금이 훨씬 좋긴 해요. 부담도 없고.

형=물론 그랬지. 우리 팀이 이기길 바라면서도 동생이 실점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라니 참 기가 막히지. 우리 선수가 네가 지킨 골문을 뚫을 때면 기뻐서 펄쩍 뛰다가도 괜스레 미안해 금세 웃음을 참고 그랬지.

동생=그래도 몰래몰래 날 가리키며 파이팅을 외쳐줬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형제는 함께 뛴 적이 없었다. 물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원에서도, 전북에서도 김병지의 영입을 검토한 시기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끝내 인연이 닿지 않았지만, 만약 ‘수원 맨’이나 ‘전북 맨’ 김병지가 탄생했다면 선수와 지원 스태프가 한솥밥을 먹는 흔치 않은 장면을 볼 수 있을 뻔했다.

동생=자주 들었던 생각인데, 형처럼 많이 우승을 맛본 사람이 또 있을까요? 수원의 황금기를 전부 지켜봤고, 전북에 합류한 첫 시즌부터 승승장구했으니. 특히 (전북에선) 자가용도 종종 바꾸잖아요.

형=아이고, (전북의 모기업 현대자동차에서) 할인혜택을 받아서 그래. 솔직히 난 복이 많은 사람이야. 선수들이 들어올리는 우승트로피지만, 구단의 모든 구성원도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도록 열심히 뛰거든. 보람이 크지. 나 못지않게 오래 K리그에서 활동한 타 팀 동료는 우승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라던데.

동생=어마어마하죠. 형은 선수 이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지만, 그만한 보람을 찾고 있잖아요. 이제는 K리그 10번째 우승도 채우셔야죠.

2017년 4월 24일 서울 청담동 카페에서 ‘패밀리가 떴다‘ 김병지-김병우 형제 인터뷰.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017년 4월 24일 서울 청담동 카페에서 ‘패밀리가 떴다‘ 김병지-김병우 형제 인터뷰.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관리

김병지는 2008년 국가대표팀 소집기간 중 허리를 크게 다쳤다. 디스크가 터져 은퇴의 기로에 놓였다. 자신의 손을 거친 수많은 부상선수들을 지켜본 형의 마음도 복잡했다. 주변에선 모두가 “나이로 볼 때 더 이상 축구를 하는 것은 무리다”고 했다. 그러나 동생은 훌훌 털어냈다. 평소 철저히 절제된 생활로 ‘자기관리의 아이콘’이 된 김병지는 기적처럼 일어섰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8년을 더 뛰었다.

형=정말 개인관리가 철저했지. 이곳 전북에도 노장들이 많은데, 정말이지 몸 관리가 대단해. 훈련이 끝나면 온탕과 냉탕을 부지런히 오가며 근육을 푸는데, 젊은 친구들은 가볍게 씻는 정도로 끝날 때가 종종 있거든. 그런데 네가 딱 우리 팀 베테랑들 이상으로 컨디션을 조절했지.

동생=형의 지원도 있었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처치, 전문적인 지식을 통한 도움도 컸지만 병원 네트워크도 원활해 재활이 잘 이뤄졌잖아요. 솔직히 너무 단호한 성격이라 선수로서 서운할 때도 종종 있었지만, 결국 그 방향에 따라 치료를 끝냈고, 생각보다 훨씬 길게 뛸 수 있었죠.

형=아니야. 처방을 잘해줘도 결국 감내하고 소화하는 것은 본인이지. 좋은 선수의 기준은 다양한데, 그 중 핵심이 자기관리야. 롱런하느냐, 순식간에 시들어버리느냐는 개인에 달렸어. 솔직히 네가 더 뛸 수 있다고 봤는데, 안타깝긴 해.

동생=갑자기 은퇴할 때가 생각나네요. 2015년 700경기를 뛰고 그해 실점도 27경기에서 30골밖에 없었는데 결국 그만둬야 했죠. 아마 다른 부분의 영향이 컸겠죠. 나이로 인한 선입관도 작용했을 수 있고. 지금도 딱 3주 정도만 기한이 주어지면 좋은 몸을 만들어 당장 뛸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 것 같아요. 그렇다고 후회는 없어요. 제2의 인생을 그만큼 빨리 시작할 수 있으니. 아, 이것도 늦은 건가?

울산현대(1992∼2000년), 포항 스틸러스(2001∼2005년), FC서울(2006∼2008년), 경남FC(2009∼2012년)를 거쳐 2013시즌부터 함께한 전남 드래곤즈에서 김병지는 3년을 보낸 뒤 유니폼을 벗었다. 그러나 은퇴를 공식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도권의 한 유력 구단이 강한 러브콜을 보냈다. 해당 팀 감독과도 이미 이야기가 끝났고, 조건 등에 대한 협의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 그러나 선수로 좀더 뛰겠다는 의지는 구단 측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로 물거품이 됐다. 그렇게 김병지는 그라운드를 영원히 떠났다.

선수 시절 김병지. 스포츠동아DB
선수 시절 김병지. 스포츠동아DB

● K리그

형=무수히 많은 논란이 있어도 K리그가 꾸준히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지. 특히 선수보호와 관리가 확연히 좋아졌어. 치료, 의료장비도 최신식으로 바뀌었고, 좋은 플레이를 향한 뒷받침까지 잘 이뤄지고 있어.

동생=골키퍼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도 달라졌어요. 포지션의 특수성을 확실히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 인프라도 놀라워요. 공설운동장이 월드컵경기장으로 바뀌고, 클럽하우스를 많은 팀들이 보유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꾀할 수 있고.

형=관리의 중요성이 크다보니 예전이라면 그냥 뛰게 한 작은 부상에도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잔디가 좋지 않은 과거에는 연골 부위의 부상이 많았는데, 지금은 인대와 근육 등을 많이 다치더라고. 환경이 몹시 좋다보니 너무 예민해진 면도 없진 않아.

동생=팬들의 목소리도 높아졌어요. 팬들의 주장이 구단 철학이나 방향에까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선수육성 시스템도 굉장히 좋아졌죠. 클럽이 직접 선수를 키워내는 구조는 언젠가 틀림없이 빛을 발하리라고 믿어요.

형=이런, 우리 골키퍼 이야기 좀 해봐. 우리 팀 (홍)정남(29)이도 칭찬해줘. 그동안 억눌려있던 간절함이 지금 표출된 것 같지 않아? 모두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우리 아킬레스건으로 골키퍼를 꼽았는데, 충분히 잘해주고 있잖아.

전북 홍정남. 스포츠동아DB
전북 홍정남. 스포츠동아DB

동생=제가 봐도 정남이가 역량을 떨치고 있어요. 일본(가시마 앤틀러스)으로 떠난 (권)순태(33)에게 가려져 얼마나 긴 시간을 보냈나요. 거의 10여년이죠. 나름의 무게감을 지닌 선수가 되고 있어요. 선배에게 보고 배운 것도 많을 거예요. 벤치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면서도 선배의 노하우를 습득했으니까, 저렇게 좋은 골키퍼가 됐죠.

형=자기 자리라고 확신할 때까지 좀더 있어야겠지만, 또 일반인의 견해이겠지만 이미 기대이상이라고 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자신을 채찍질해 달려온 모습도 대견하고.

동생=무엇보다 전북 최강희 감독님의 믿음도 상당하죠. 과감히 기회를 주고 계기를 열어주셨으니. 특히 전북과 같은 팀에서 엄청난 모험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성공한 선수들이 전북에는 얼마나 많나요. 마냥 이름값에 매달려 스타급들에게 구애작전을 펼친 것도 아니고, 신속하게 결단했잖아요. 그런 것이 좋은 선수를 만들어내는 믿음이죠.

형=나름의 아픔과 사연을 가진 선수들이 묵묵히 자신만의 성공시대를 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이 삶의 보람이야.

동생=그것이 K리그의 스토리죠. 축구장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담겨 있으니까요.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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