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는 내 영웅” 히잡 쓴 ‘얼음공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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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권 첫 출전 UAE 자흐라 라리 세계수준과는 멀지만 “평창 도전”
주변 반대에도 매일 5시간 훈련

아랍 국가 출신 최초의 여자 피겨 선수 자흐라 라리(아랍에미리트)가 25일 삿포로 겨울아시아경기에서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삿포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아랍 국가 출신 최초의 여자 피겨 선수 자흐라 라리(아랍에미리트)가 25일 삿포로 겨울아시아경기에서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삿포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연아의 몸짓이 저에게는 전부예요. 지금도 연아처럼 환상적인 연기를 하는 꿈을 꿔요.”

‘히잡 쓴 얼음 공주’ 자흐라 라리(22·아랍에미리트)는 25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실내 링크에서 열린 삿포로 겨울아시아경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마친 뒤 ‘피겨 여왕’ 김연아를 아느냐는 질문에 깊은 존경심을 드러냈다. 자신이 김연아에 대한 질문을 받은 것 자체가 큰 영광이라고 했다.

라리는 아랍권 최초의 여자 피겨 선수다. 히잡을 머리에 두른 피겨 선수가 겨울 스포츠 국제종합대회에 나선 것도 처음이다. 라리는 아직 점프가 서투르고 회전 스피드도 약해 세계 수준과는 실력 차가 크다.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는 53.37점을 기록해 쇼트프로그램과 합계 76.68점으로 참가자 24명 중 18위를 했다. 아직 3회전 점프를 완성하지 못한 그는 이날 다소 긴장한 듯 2회전 루프와 쉬운 점프에서도 잔실수를 했다.

실력을 떠나 세계 피겨계에서 라리의 존재는 각별하다. 여자 피겨 선수를 운동선수로 보지 않고 직업적으로 춤을 추는 댄서로 여기는 중동에서 잡초처럼 포기하지 않고 피겨 열정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12세 때 피겨를 시작한 라리 앞에 의지를 꺾어버릴 장애물이 많았다. 심지어 아버지 등 가족들은 주변 지인들로부터 “왜 딸이 피겨를 하도록 나뒀느냐”는 항의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다.

그럴수록 라리는 강해졌다. 매일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2시간을 연습한 뒤 학교 수업을 마치고 3시간을 더 빙판에서 보낸다. 체중 조절을 하면서 점프를 더 높이 뛰려고 좋아하는 간식을 끊고 수프와 치킨 샐러드만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어린 시절 옆에 끼고 살았던 아이스크림도 2∼3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피겨에 ‘올인’하고 살았다.

라리에게 피겨는 도전이다. 중동 피겨의 개척자인 라리는 자신의 나라에서만큼은 피겨 선수를 하지 말라고 하는 관행을 없애는 게 목표다. 현재 아부다비대에서 환경보전안전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은퇴 후에는 중동에서 여자 피겨가 아름다운 스포츠로 자리 잡도록 하는 일을 꿈꾼다.

이런 자신의 의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평창 겨울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단다. 하지만 기록상 라리가 3월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올림픽 진출권을 따기는 불가능하다. 9월 마지막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네벨혼 트로피 대회에서도 6위 안에 들어야 한다.

내년 평창에서 라리가 김연아를 만날 수 있을까. 라리는 “내 ‘모토’(신조)가 ‘나는 기적을 믿는다’는 것”이라며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활짝 웃었다.
 
삿포로=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자흐라 라리#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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