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아직 멀었군, AI” 인간이 웃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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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졌지만 번역대결선 승리

《 인공지능(AI)과 인간이 영문을 번역하는 대결을 펼쳐 인간이 정확한 번역으로 승리했다. 국제통역번역협회(IITA)와 세종대가 2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공동 주최한 ‘인간 대 기계의 번역 대결’에서 인간은 번역 정확도에서 AI를 능가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실력 또한 초벌번역 수준까진 올라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인공지능은 맥락을 읽고 음미하는 문학 감성은 떨어지고 무뚝뚝했지만 모든 번역을 1분 안팎에 끝내는 압도적인 속도를 자랑했다.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는 인공지능의 장점과 문맥을 파악하는 인간의 장점이 더해지면 더 큰 시너지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
 

2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세종대와 국제통역번역협회 주최로 열린 ‘인간 대 인공지능 번역 대결’에서 인간 번역사가 영문 지문을 번역 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세종대와 국제통역번역협회 주최로 열린 ‘인간 대 인공지능 번역 대결’에서 인간 번역사가 영문 지문을 번역 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인공지능(AI)은 꼬아서 말하면 알아차리지 못하더군요. 문학적인 표현에서 한계가 드러났습니다.”(곽중철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AI 번역기와 인간 번역사의 영문 번역 대결은 인간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정확성 면에서 AI 번역기가 전문 번역사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AI는 비유적인 표현에서 약점이 두드러졌다. 언어유희나 뉘앙스까지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다만 속도 면에서는 압도적이었다. 인간 번역사들이 50분간 번역한 글을 AI는 단 1분 만에 처리해 냈다. 막대한 양의 자료를 짧은 시간에 번역할 수 있는 AI 번역기가 다방면에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한 장면이다.

○ 인공지능, 문학 표현은 이해 못해

21일 국제통역번역협회(IITA)와 세종대 주최로 열린 ‘인간 대 기계의 번역 대결’엔 4명의 전문 번역사와 3종의 AI 기반 번역기가 참여했다. AI 측 대표로는 미국 구글, 한국의 네이버(파파고)와 시스트란 등 3개 회사가 만든 번역기가 나섰다. 인간과 AI 양쪽 진영은 즉석에서 문제를 받고 영문 번역을 시작했다. 영어로 된 문학 지문과 신문 기사 등 비(非)문학 지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문제 2개, 한국어로 된 문학 지문과 비문학 지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문제 2개가 출제됐다.

AI는 비유적인 표현에 덜미를 잡혔다.

대표적인 사례가 토머스 프리드먼의 수필 ‘Thank You for Being Late’에 나온 ‘App industry exploded’(애플리케이션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라는 문장이다. 인공지능은 ‘폭발’을 직역하는 데 그쳤다. ‘앱 산업은 폭발했습니다’(시스트란), ‘앱 산업 폭발했다’(네이버), ‘앱 산업이 폭발했다’(구글)처럼 조사만 다를 뿐 셋 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다.

채점 결과는 당연히 인간의 승리였다. 통역대학원을 나온 인간 번역사들은 국문→영문, 영문→국문에서 30점 만점에 각각 평균 24점, 25점을 받았다. 반면 AI 번역기의 평균점수는 두 부문에서 각각 9.3점(7∼13점), 10.6점(8∼15점)에 그쳤다. 곽 교수는 “AI의 문학 번역은 정확성이 크게 떨어져 전체의 90% 정도는 문장조차 제대로 구성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평가는 양측의 번역 방식의 차이 때문에 AI는 단번에 번역을 끝낸 반면 인간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오류를 고칠 수 있는 환경에서 치러졌다. 대회를 주최한 IITA 측은 “실수를 하더라도 검토를 하면서 고칠 수 있는 것도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 “비문학 분야에선 수년 내 대부분의 의미 번역”

AI 번역은 문법을 입력해 풀이하는 기계번역과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번역으로 진화했다. 약 3년 전에는 신경망 자동번역이 도입되면서 기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현재 기기 매뉴얼의 번역은 뜻이 80%가량 통하게 번역한다. 그러나 뉘앙스와 감정이 담긴 언어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현재 AI 통·번역 기술 목표는 관광가이드 수준의 짧으면서도 실용적인 언어를 해석하는 것으로 프로 번역과는 거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의학처럼 전문 용어를 비유 없이 쓰는 영역에선 수년 안에 의미를 대부분 전달하는 수준까지 번역이 발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저자의 의도까지 파악하는 수준은 아직 먼 미래다. 인공지능 전문 기업 솔트룩스의 신석환 부사장은 “AI가 저자의 의도까지 생각하며 번역하는 것은 미래에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결을 본 학회 관계자들은 “바둑과 달리 번역은 인간과 기계가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고 규정했다. 번역가가 AI의 발전을 겁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AI는 많은 문장을 단시간에 번역할 수 있는 만큼 그것을 기초 삼아 매끄러운 번역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AI 번역 기술로도 영어 사교육 시장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번역 대결을 지켜본 유명 토익강사 김대균 세종사이버대 영어학과 교수는 “사교육 시장에서 문제풀이 위주의 대형 강의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항풀이 수준의 간단한 번역은 이미 AI 번역기로 혼자 공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임현석 lhs@donga.com·김단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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