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51>호기심의 방, 경이로운 저장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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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란테 임페라토, ‘호기심의 캐비닛’.
페란테 임페라토, ‘호기심의 캐비닛’.
 16세기 서구에 수집 열풍이 불었습니다. 지리상의 발견과 해외 무역 확대와 함께 신대륙의 물건들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진귀하고 이국적인 품목들이 교육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서 수집되고, 진열되었어요. 

 수집품을 모아둘 비밀스러운 사적 장소도 필요했지요. 이탈리아 스투디올로가 대표적입니다. 권력가들은 ‘작은 서재’라 불리던 이곳에 진귀한 도서와 값진 소장품을 함께 전시했습니다. 한편 다른 유럽 국가에도 비슷한 성격의 공간이 출현했습니다. 독일에는 ‘경이의 방’을 뜻하는 분더카머가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에는 수집과 전시 공간인 ‘호기심의 캐비닛’이 존재했어요. 

 당시 수집 공간은 페란테 임페라토의 저서 ‘자연사’ 속 삽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벽면 서가에서 천장의 박제 악어까지 진열품 면면이 다채롭기도 합니다. 얼핏 무질서해 보이는 수집품들 유형은 크게 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자연에서 모은 소장품들이었어요. 조개껍데기와 화석, 동물 뼈와 원석, 식물과 열매 등이 여기 해당했지요. 다른 하나는 인간이 만든 것들이었어요. 광학도구와 망원경, 동전과 무기, 악기와 미술품 등이 바로 그것이지요. 판화 속 공간이 오늘날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동물원, 수족관, 기념관의 초기적 형태로 언급되는 이유입니다.

 세상과 우주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장소의 주인공은 무엇이었을까요. 고가의 희귀품만이 아니었습니다. 형태 왜곡이 심하거나 기괴한 소장품, 쓰임이 모호하거나 불명확한 수집품이 주목을 받았지요. 경이의 방 조성은 수집 자체에 궁극적 목적이 있지 않았어요. 당대인들은 동일 범주로 쉽게 분류되지 않는 수집품들에서 지적 자극을 받고자 했어요. 상식으로 이해 불가능한 소장품을 매개로 예술적 상상력을 확장하려 했지요.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새롭게 경험했던 기이함과 형편에 넘치게 받았던 대접, 미지의 영역에 남겨 둔 문제와 양심의 제어를 벗어났던 부끄러움 등. 올 한 해를 채웠던 특별했던 순간들과 특이했던 사건들로 내 마음속에 경이의 방을 지어 보려 합니다. 나만의 가상공간은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그 안의 수집품들은 판화에서처럼 호사스럽지도 않겠지요. 그럼에도 이런 시도가 내년에도 계속될 내 삶의 열정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판화 속 호기심의 공간이 당대인들의 앎의 의지를 되살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스투디올로가#페란테 임페라토#호기심의 캐비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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