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cience Says]‘분노 마케팅’ 시대… 美女-몸집 큰 남성에 유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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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기술과 생리학적 특성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착하다고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느낄 때가 있다. “착한 사람은 항상 손해 본다”는 말과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진리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분노를 마냥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다양한 증거를 제시했다. 특히 분노 표현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어 기술이 필요하다는 게 과학자의 권고다.

 분노는 양면성을 갖는 감정이다.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면 왜 화를 내는지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가도, 때로는 갈등을 회피하고자 이를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분노는 이처럼 ‘접근 신호’이자 ‘기피 신호’를 던져준다. 그렇다면 양면성을 가진 분노를 어떻게 읽어내고 활용할 수 있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14호(12월 1호)에 소개된 원하는 것을 이뤄내기 위한 분노 표현의 기술과 분노의 생리학적 특성 등을 요약해 싣는다.

○ 사람들은 화난 표정에 가장 빨리 주목

 분노는 ‘광속(光速)’으로 주목을 받는다. 사람들은 많은 표정 가운데서도 화를 내는 표정에 가장 빨리 집중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실제 화난 표정, 슬픈 표정, 행복한 표정의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뒤 반응 시간을 쟀다. 각각의 표정에 주목하는 데 걸린 시간은 화난 표정(652ms·1ms는 1000분의 1초), 슬픈 표정(670ms), 행복한 표정(692ms)의 순이었다. 나이 든 사람도 속도만 200ms 더 늦을 뿐 반응 순서는 같았다. 이처럼 분노가 다양한 표정 가운데서도 가장 빨리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생존과 위협의 감정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광속의 반응을 이끄는 분노에는 성차별이 존재한다. 남녀가 각각 화난 표정으로 반대 의견을 밝혔을 때 집단 내에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5명으로 구성된 집단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4명이 같은 의견이고 다른 1명(남성 또는 여성)이 분노한 표정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했을 때 어떠한 평가가 나오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여성이 화난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 구성원 대부분이 여성의 입장을 신뢰하지 않고 등을 돌렸지만, 남성의 경우 그와 반대로 대부분이 남성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화를 낸 사람이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는 시각이 달랐다. 분노는 남성에게는 파워, 여성에게는 상실을 가져다주는 셈이다.

 분노의 표현에 대한 성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은 화가 나더라도 이를 직접적이고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기거나 억누르려 한다. 화를 내면 부정적인 인상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성차별 때문에 분노하지 않고 이를 꾹꾹 눌러오다 여성들은 속병이 들거나, 다른 여성이 분노하는데도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한계도 보인다. 계속해서 분노를 억누르고 표현하지 않다 보니 자신의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지만, 상대방의 분노를 읽고 대응하는 데도 서투른 것이다.

○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분노의 기술

 화를 잘 내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생활에서 남성의 완력과 여성의 신체적 매력은 힘의 원천이다. 과학자들은 거구의 남성과 매력적인 여성이 화를 내면 사회생활에서 어떤 이점을 얻는지 검증했다. 실제로 거구의 남성이 화를 냈더니 사람들은 그를 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했다. 구체적으로 덩치 큰 남성이 화를 내면 갈등이 쉽게 해결됐다. 마찬가지로 금발의 미녀가 화를 내거나 까다롭게 굴면 더 환대를 받았다. 남성의 완력과 여성의 신체적 매력이 분노와 결합하면 사회생활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

 매력적인 남녀가 화난 표정을 지으면 그것조차도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실험 결과도 있었다. ‘매력 남녀’가 화난 표정을 짓는 것(7점 만점을 기준으로 평균 3.62점)은 매력 없는 사람의 행복한 표정(평균 2.68점), 중립적 표정(평균 2.53점), 화난 표정(평균 2.42점)보다 더 매력적으로 평가를 받았다. 일상생활에서 소위 쓰이는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표현은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고 하겠다.

○ 분노가 넘쳐나는 시대

 사회 문제에 대한 분노는 공익에도 도움이 되지만 당사자의 이미지도 좋게 한다. 예컨대 타인의 이기적인 행동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은 자신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광고하는 셈이 된다. 사회운동가나 정치인들이 흔히 정의를 명분삼아 분노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들이 정의 때문이라기보다는 개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 분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분노는 협상 생산성을 높여주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감정 표현이 금기시되는 협상에서 분노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실속 있는 전술이라고 밝힌다. 협상에서 화를 내면 입장이 완고해 양보할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해석돼 상대방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분노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노라는 감정은 진실함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의 ‘시그널’을 전달한다는 점을 이용해 때때로 거짓말이 탄로 나거나 잘못이 드러났을 때 일부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분노한다.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 ‘적반하장’이란 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하겠다.

 요즘은 분노의 시대이자 분노를 마케팅하는 시대이다. 정치인, 학생, 직장인 모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이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통해 분노를 표현하고, 소비자들은 기업의 사회적 ‘갑질’에 불매운동으로 분노 표현을 한다. 분노를 표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거의 없지만 그 대가로 ‘개념 있다’는 이미지를 얻어갈 수 있기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분노가 집결되고 있다.

 공작 수컷이 암컷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려한 깃털을 과시할 수 있게끔 진화한 것처럼 요즘은 도덕적 분노가 개인의 가치를 좌우하는 시대가 돼 버렸다. 자기 이익을 위해 분노를 잘 표출하는 전문가들로 넘쳐난다. 따라서 그런 분노가 과연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인지,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인지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분노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해준 덕분에 우리는 분노 뒤에 숨은 이기심의 그림자를 추리할 수 있게 됐다.

 허행량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리=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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