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헤드셋 쓰고 드론 띄우자 온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 황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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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이 바꾸는 세상]‘VR드론의 강자’ 프랑스 패럿을 가다

《 하늘의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드론(무인비행기) 산업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혁신산업과의 연관성이 높은 드론은 조만간 스마트폰처럼 ‘1인 1대’씩 보유하는 보편적 정보기술(IT) 기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경쟁도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이스라엘 등 세계 유명 드론 기업을 찾아 이들의 혁신 기술과 성장 전망, 한국이 배워야 할 점 등을 소개한다. 》
 
 
 지난달 초 프랑스 파리는 초겨울로 접어든 듯 쌀쌀했다. 올해 3월부터 반년간 끈질기게 취재를 요청한 끝에 지난달 3일 세계 2위 상업용 드론 업체 패럿의 본사가 위치한 파리 10구에 도착했다. 엄격한 보안 정책 때문에 한국 언론에 단 한 번도 본사를 공개하지 않은 패럿인지라 부푼 기대감을 안고 길을 나섰다.

 빈민가로 유명한 지역답게 파리 10구 곳곳엔 노숙인을 위한 이동식 텐트와 공중화장실이 즐비했다. 허름한 6층 건물이 세계적 혁신기업의 본사라니 다소 실망스러웠다. 표지판도 간판도 없는 이 건물의 문을 열었다.

 “봉주르(좋은 아침)!” 야니크 레비 패럿 수석부사장(47)이 직접 기자를 맞았다. 건물 안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천장에는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드론이 곳곳에 매달려 있고, 벽에는 강렬한 원색 그림이 많아 흡사 현대식 미술관 같았다. 키가 큰 몇몇 패럿 직원은 천장에 매달린 드론에 자신의 머리를 부딪히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피해 다녔다.
지난달 3일 프랑스 파리 패럿 본사에서 VR 드론 ‘비밥2’를 조종하고 있는 이영혜 기자(위쪽 사진). 9월 28일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가상현실 비행 시뮬레이터 ‘버들리’를 체험했다. 버들리를 타면 별도의 비행 훈련을 받지 않
은 사람도 새가 되어 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파리·취리히=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지난달 3일 프랑스 파리 패럿 본사에서 VR 드론 ‘비밥2’를 조종하고 있는 이영혜 기자(위쪽 사진). 9월 28일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가상현실 비행 시뮬레이터 ‘버들리’를 체험했다. 버들리를 타면 별도의 비행 훈련을 받지 않 은 사람도 새가 되어 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파리·취리히=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 드론의 미래 ‘VR 드론’

 패럿은 1994년 프랑스 기업가 앙리 세두(56), 장피에르 탈바르, 크리스틴 드 투르벨이 핸즈프리 등 자동차용 무선기기를 제조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2012년 7월 스위스 드론 업체 센스플라이를 인수하며 드론 사업에 뛰어들었고 현재 가상현실(VR) 드론 분야의 최강자로 평가받는다.

 VR 드론은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드론 조종자가 쓴 헤드셋에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형태다. 이를 통해 드론 조종자는 인간의 시점으로는 볼 수 없는 각종 풍경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흡사 자신이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까지 얻는다. VR 드론이 촬영 등에 특화된 일반 상업용 드론보다 한 단계 더 앞선 미래형 드론으로 불리는 이유다.

 패럿 본사 2층에 마련된 드론 시험장에 들어섰다. 세드릭 델마스 패럿 글로벌 마케팅이사(40)가 VR 드론 ‘비밥2’의 헤드셋을 기자의 머리에 씌워줬다. 조종기를 잡고 드론을 하늘로 날리자마자 흡사 기자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오 뜬다!”란 말이 절로 나왔다.

 제자리 비행에 이어 드론이 마구 움직이는 2단계 비행에 돌입했다. 시험장 구석구석을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VR 드론 때문에 흡사 기자가 놀이공원의 360도 열차를 탄 기분이 들었다. 드론이 벽에 빠른 속도로 접근할 땐 내 몸이 벽에 부딪힐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델마스 이사는 “장애물 감지 기능이 있어 괜찮다”며 웃었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1인칭 시점(FPV·First Person View) 체험. 델마스 이사는 VR 드론을 기자의 머리 정면 위 2m 높이로 띄운 뒤 정지했다. 그러자 발 아래로 VR 헤드셋을 쓰고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기자 본인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놀라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치 신이 돼 온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 VR 드론을 탄생시킨 증강현실 게임

 패럿이 VR 드론의 선구자가 된 건 증강현실(AR) 게임 ‘AR.Race’ 덕분이다. 패럿은 센스플라이를 인수하기 2년 전인 2010년 초 무선조종 헬리콥터로 즐길 수 있는 이 게임을 발표했다. 카메라가 내장된 헬리콥터를 무선으로 조종하며 카메라에 비친 가상의 외계인과 싸우는 ‘AR.Race’는 올여름 화제를 모았던 또 다른 AR 게임 ‘포켓몬 고’와 유사하다. 

 2010년 당시 한 박물관에서 우연히 1907년 프랑스 발명가들이 만든 자이로플레인(현 헬리콥터)을 접한 세두 공동 창업자는 “스마트폰으로 조종하는 장난감 헬리콥터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의 상업화를 추진하다 센스플라이를 인수했고, 이것이 오늘날 패럿의 토대가 됐다고 레비 수석부사장은 설명했다.

 패럿은 올해 9월 최신형 VR 드론 ‘디스코’를 출시했다. 디스코는 비행가능 시간이 무려 45분에 달해 20분 내외인 일반 드론보다 훨씬 오랫동안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다. 레비 수석부사장은 “세계 드론 업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지만 VR 드론처럼 경쟁사가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하이엔드 제품을 만들어 이에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 VR 드론의 미래 ‘버들리 머신’

 일반 상업용 드론의 미래형이 VR 드론이라면 VR 드론에서 더 발전된 형태가 바로 VR 비행 시뮬레이터다. 패럿 본사를 방문하기 5일 전인 올해 9월 28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VR 드론과 비행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는 이 분야의 권위자 막스 라이너 취리히예술대 교수(44)를 만났다.

 그는 서울에서 취리히까지 12시간을 날아온 기자에게 다짜고짜 안마기 같은 요상한 흰 기계 위에 엎드리라는 말부터 했다. ‘헤드셋과 선풍기까지 연결된 이 요상한 기계의 정체는 무엇일까’ 반신반의하며 초면인 그 앞에서 대(大)자로 엎드렸다.

 헤드셋을 쓰고 두 팔을 벌리자 기자의 몸은 미국 뉴욕 맨해튼 시내를 훨훨 날고 있었다. 뾰족하게 솟은 마천루의 윤곽이 생생히 보였고 머리카락이 날릴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도 느껴졌다. 몸을 살짝 숙이자 머리로 피가 쏠리면서 추락에 대한 공포감이 확 몰려왔다. 겁이 나 헤드셋을 벗자 맨해튼 풍경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2014년 라이너 교수가 개발한 VR 비행 시뮬레이터 ‘버들리(Birdly)’였다.

 라이너 교수는 VR 드론과 비행의 결합을 추진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금 본 맨해튼 풍경은 여러 장의 실제 사진을 겹쳐 만든 3차원 그래픽 영상을 틀어준 것이지만 VR 드론과 버들리를 결합하면 해당 드론이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을 바로바로 볼 수 있어 훨씬 생생한 경험이 가능합니다.” 즉 조종자가 가 보고 싶은 지역에 직접 드론을 띄우고, 이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인터넷 생중계 하듯 버들리로 전송하면 굳이 해당 지역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생생한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버들리는 기자처럼 별도의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도 쉽게 탈 수 있다. 라이너 교수는 “하늘을 나는 것은 인간의 오랜 꿈”이라며 “드론이 이 꿈을 이뤄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25일 독일 쾰른에서 만난 광학장비회사 자이스의 프란츠 트로펜하겐 시니어 매니저(44)는 아예 “VR 드론이 여행의 기본 개념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자이스는 VR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인간이 더욱더 생생하고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특수렌즈를 생산한다. 현재 패럿은 물론이고 세계 1위 상업용 드론 업체 중국 DJI와도 손잡고 VR 전용 헤드셋 ‘VR ONE’을 개발하고 있다.

 트로펜하겐 매니저는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거나, 복잡하고 어려운 조종 훈련을 받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취리히·쾰른=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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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헤드셋#드론#패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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