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과 절망의 땅밑엔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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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3집 낸 英 솔 싱어송라이터 커린 베일리 레이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영국 가수 커린 베일리 레이.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영국 가수 커린 베일리 레이.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성서의) 출애굽기와 같죠. 비탄과 절망의 시기를 지나면 어느덧 급진적 변화가 찾아와요. 문득 내가 어디 있는지를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

가수 아이유의 우상으로 알려진 영국 솔 싱어송라이터 커린 베일리 레이(Corinne Bailey Rae·37)를 최근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만났다. 6년 만에 낸 신작 ‘The Heart Speaks in Whispers(심장은 속삭여 말한다)’에 관한 레이의 얘기는 마치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점묘한 듯했다.

2006년 1집의 ‘Like a Star’ ‘Put Your Records On’이 전 세계의 라디오 전파를 탔고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레이는 화려하게 데뷔했다. 2집을 준비하던 2008년, 남편이 요절했다. 4년 만에야 나온 2집 ‘The Sea’(2010년)는 사별의 아픔을 담은 음반이었다. 2013년 그는 사별 앨범을 함께 만든 프로듀서 스티브 브라운과 재혼했다.

“어느 날 꿈에서 ‘하늘이 열릴 것이다/바다가 갈라질 것이다’라는 음성을 들은 뒤 곡을 썼어요. 제가 기타 부분을, (새 남편) 스티브가 피아노 부분을 써서 합쳤죠.” 신작을 여는 ‘The Skies Will Break’(QR코드)는 벽력같은 운명의 힘을 리듬의 약동에 실은 노래다. “앨범 제목(‘심장은 속삭여 말한다’)은 이집트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기억, 꿈, 경험, 고통, 기쁨을 담는 신체기관을 현대과학에서는 뇌로 보지만 고대 이집트에선 심장으로 봤거든요.” 레이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록 밴드에서 기타를 치다 솔 장르로 전환했다.

‘Green Aphrodisiac’는 앨범의 중심이 되는 곡. 아찔한 새 연애 감정을 백화만발한 녹색 정원에 비유했다. “상실과 치유, 시간과 변화. 만물이 시들고 차가워 절망적일 때 실은 바닥 밑에서 자라고 있는 것들….” 레이는 “(지난달 29일) 초저녁, 녹음이 우거진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섰을 때 날 둘러싼 모든 게 그 노래와 맞아떨어졌다”며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새 앨범 제작은 영국 리즈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나눠 진행됐다. “(고향인) 리즈는 런던보다도 춥고 비가 많이 오죠. 반면 로스앤젤레스의 따사로운 햇살은 관능적 기운을 선사했어요. 플라잉 로터스, 선더캣, 킹, 카마시 워싱턴 같은 그곳의 진취적인 음악가에게서 영향을 받으며 ‘이게 인디 음반이라면 어떤 식으로 편곡했을까’ 하는 식으로 접근해 봤어요.”

피크닉 형태로 펼쳐진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축제 기간 내내 조금 소란스러웠다. 음악에 집중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레이가 앙코르로 ‘Like a Star’를 부른 순간은 예외였다. 신비로운 샛별을 바라보듯 관객 1만 명이 숨을 죽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내다 음반 마무리 작업을 위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두웠던 리즈에도
봄이 왔다고 했다. “정원에서 신발을 벗고 꽃이 피어나는 걸 봤죠. 삶에도 계절이 있는지 몰라요. 씨앗을 심고 기다리면 꿈꿔 왔던 완벽한 나날이 올 거라는 약속….”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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