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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광표]문학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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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광표]문학의 조건

이광표 오피니언팀장 입력 2016-03-15 03:00수정 2016-03-1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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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오피니언팀장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 비비언 마이어의 사진전이 열렸다. 마이어는 1950년대부터 40여 년간 미국 뉴욕과 시카고에서 보모와 간병인으로 일하며 매일매일 사진을 찍은 인물. 그는 자신을 단 한순간도 전문적인 사진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진을 세상에 발표하고픈 생각도 없었다. 가족도 없고 재산도 없던 그는 필름 등이 담긴 200여 개의 상자를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창고를 빌려 보관했다. 하지만 임차료조차 내기 어려웠고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인 2007년 그것들은 경매로 처분되었다. 엄청난 양의 필름과 그의 사진은 그렇게 우연히 세상과 만났다.

이 시대, 많은 예술가들은 타인을 의식한다. 좀 과장하면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마이어의 사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전시장 패널에는 “절대적 순수함과 강렬함을 품고 있는 마이어의 사진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것이 마이어 사진의 본질이었을지 모른다. 예술가란 어떤 것인지, 예술가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아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전시였다.

좀 다르긴 하지만, 영화 ‘동주’를 보면서 시종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문학의 존재 의미였다. 윤동주에게 문학은 부끄러움이었다. 식민지 청년은 늘 자신의 선택을 부끄러워했다. 기독교적 윤리관 때문이었을까, 시대 상황 탓이었을까. 아니면 타고난 천성이 그랬던 것일까. 영화에서 윤동주는 ‘몽규는 늘 나보다 한 발짝 앞서 간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러웠기에 윤동주는 고뇌해야 했다. 고뇌와 갈등으로 시를 썼건만, 너무 쉽게 시가 써지는 것만 같아 또 부끄러웠고 그래서 시를 발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윤동주의 시편 대부분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고 3년이 지나 세상에 나온 것들이다.

그런데 고뇌하고 갈등했기에 윤동주는 더 문학적이었고 더 시인일 수 있었다. 그가 4촌 송몽규처럼 현실 참여적이었다면 그의 문학은 오히려 문학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좋은 문학작품엔 갈등과 고뇌가 있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갈등과 고뇌가 있어야 여운이 깊어진다. 윤동주의 부끄러움과 고뇌는 송몽규의 현실 참여보다 더 문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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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윤동주 시집을 펼쳤다. 1999년 나온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 표지는 누렇게 바랬고 한쪽 모퉁이는 딱딱해져 떨어져 나갈 듯했다. ‘자화상’ ‘아우의 인상화’ ‘십자가’ ‘별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바람이 불어’…. 먼지 쌓인 시편 곳곳엔 여전히 윤동주의 부끄러움이 살짝 웅크리고 있었다. 시들은 모두 윤동주의 일기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시가 아니라, 자신을 끝없이 성찰하고 고백하는 일기 같은 시. 그렇기에 윤동주의 부끄러움과 고뇌가 투명하게 시로 옮겨갈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좋아하는 것도 성찰과 부끄러움의 기록, 내면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비비언 마이어의 사진과 윤동주의 시는 시대가 다르고 상황도 다르다. 윤동주가 더욱 처절하고 힘겨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과 문학에 대해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알파고 얘기가 넘쳐나는 요 며칠, 인공지능이 시를 짓고 그림까지 그릴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오는 요 며칠,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윤동주 시가 진정 문학적인 이유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 kplee@donga.com


#비비언 마이어#윤동주#송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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