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시의 눈]소금인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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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인형 ―류시화(1958∼)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재지 않고는 사람살이도 사회 운영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늘 한 길 사람 마음속을 헤아리며 살아간다. 그러지 않으면 삶은 모든 관계를 잃고 충돌과 고립에 빠질 것이다. 또 가진 바 성품과 능력을 알지 못하면, 누가 어느 자리에서 뭘 하고 살아야 할지 사회가 인도하고 지정해줄 수도 없을 것이다. 바다를 재보려는 일도 이처럼 앎의 욕구에 따른 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엔 잴 수 없는 것도 있다. 소수점 이하까지의 허망한 수치로 학업능력을 측정하여 어떤 학생은 대학에 보내고 어떤 학생은 학원으로 보내는 것은 얼마나 정확한 판정일까. 시험과 평가는 사람의 자질과 집단의 역량을 아주 쉽게 재단하는 불가능을 보여준다. 현실 논리와 실용의 눈금으로 잴 수 없는 것은 인간 자체인데도 우리는 인격 대신에 소유를, 실력 대신에 출신을 근거로 사람의 전부를 평가하며 살아간다. 사람을 계량하고 판단하고 사용하자는 생각이 지배 이념이 되었다. 척도의 타당성도, 제도의 공정성도 믿기 어려운 판국에 혼란과 다툼이 넘쳐난다.

이 시는 그렇게는 잴 수 없는 것의 예로 사랑을 든다. ‘재다’의 시도와 ‘녹아버렸네’의 실패 사이에 현실논리와 실용주의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고 사랑은 정확하고 거대하게 존재한다. ‘소금인형’에게 바다가 그러했듯 한 길 사람 속은 수천 길 물이 되어 ‘나’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이 시는 이렇게 사랑의 위대한 힘 앞에 불가항력적으로 허물어져 내리는 인간의 기쁨을 보여준다. ‘나’는 소멸하지 않고 ‘당신’과 한 몸이 되어 바로 사랑 자체가 된다. 어떤 이는 요즘 나라가 망해간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또 이 나라를 떠나는 게 살 길이라고 권한다. 나는 이 말을 믿은 적이 없지만, 사람과 사랑 앞에 손 모을 줄 모르는 마음들이 득세한 나라는 ‘정확하게’ 무너져가는 사회이리라 가끔 생각한다.

이영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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