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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이슬’ 적신 수도권에 ‘아홉시반’ ‘좋은데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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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이슬’ 적신 수도권에 ‘아홉시반’ ‘좋은데이’가 왔다

김성모 기자, 박창규기자 입력 2014-11-29 03:00수정 2014-11-2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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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족쇄 풀린 지역구 소주들… 전국구 무대로 독한 전쟁
지난해부터 전국 최대 규모인 수도권 시장을 겨냥한 지방 소주업체들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전국구 지존’ 자리를 열망하는 소주업체들의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무학 제공
25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 식당가. 대학교 이름이 적힌 야구점퍼를 걸친 남녀 서너 명이 술집에 들어가 테이블을 돌며 무언가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들이 들고 있는 것은 소주. 알고 보니 전남지역에 본사를 둔 소주회사 보해의 영업사원들이 올 초 첫선을 보인 ‘아홉시반’을 홍보하기 위해 강남역 근처를 돌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야구점퍼에 적힌 글씨도 실제 대학이 아닌 ‘아홉시반 주립대학’이다. 이것은 보해가 최근 대학가를 돌며 진행 중인 토크콘서트의 제목이기도 하다.

보해의 영업을 맡고 있는 윤필영 ‘프로’(보해 직원의 사내 호칭)는 “영업사원 혼자, 또는 두세 명이 짝을 지어 하루에 30∼40곳의 식당을 돌며 아홉시반을 알리고 있다”며 “수도권에서 제품 인지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에는 경남 창원이 본사인 무학 직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좋은데이’를 형상화한 전신 인형을 뒤집어쓴 채 길거리를 돌며 행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세봉 무학 마케팅팀 주임은 “올 들어 거의 매일 서울 시내 주요 상권을 돌며 이런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목표도 보해와 다르지 않았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 좋은데이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자도주법 폐지로 시작된 팔도 소주 전쟁



본래 소주는 지역색이 강하기로 유명한 술이다. 정당이나 프로야구단 선호도만큼이나 출신 지역에 따라 선호도가 좌우되는 게 바로 소주다. 이러한 문화는 정부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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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70년 저질 주류 생산 방지와 유통 질서 회복을 명분 삼아 전국의 소주 제조업체 254곳을 통폐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1977년 시도별로 한 곳의 소주 제조업체만 살아남았다. 이때 살아남아 자도주(自道酒) 지위를 얻은 업체가 바로 △진로(서울·경기) △대선(부산) △경월(강원) △대양(충북) △선양(충남) △보배(전북) △보해(전남) △금복주(경북) △무학(경남) △한일(제주) 등 10개사다.

정부는 지역 주류도매업자들이 매달 소주 구입비용의 50%를 자도주를 사는 데 써야 한다는 ‘자도주 의무구입제도(자도주법)’도 도입했다. 지역 소주회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도주법이 1992년 폐지된 것이 계기가 됐다. 수도권 터줏대감인 진로에 맞서 ‘전국구 브랜드’를 꿈꾸는 지역 회사들의 분투기가 이때 비로소 시작됐다.

선두주자는 두산이었다. 맥주 브랜드 ‘OB’를 가진 두산은 1993년 11월 강원의 경월을 인수해 사명(社名)을 두산경월로 바꾸며 소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롯데주류가 된 두산경월은 1994년 1월 ‘그린소주’를 내놨다. 이 제품은 투명하던 기존 병의 색깔을 녹색으로 바꾸고 ‘대관령 청정수’를 사용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두산경월의 강점은 무엇보다 영업망에 있었다. 맥주를 팔던 영업사원들이 소주 영업에도 뛰어들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출시 7개월 만에 1억 병이 팔려나갔다. 김조일 롯데주류 홍보팀장은 “당시 그린소주의 수도권 점유율은 50%를 넘길 정도였고, 특히 경기 수원 등에서 그린소주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며 “그린소주는 두산경월을 전국 브랜드로 거듭나게 한 일등공신”이라고 회상했다.

진로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1994년 5월 ‘카스’를 선보이며 맥주 시장에도 뛰어들었고 지방 공략에도 박차를 가했다. 대기업의 공세를 우려하는 지방 회사들의 반발에 정부는 1995년 10월 자도주법을 다시 도입했다. 하지만 이번엔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걸었다. 헌재는 1996년 12월 자도주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국내 소주 시장은 보호막이 사라진 사실상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다.

프리미엄 소주가 불러온 수도권 대전(大戰)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 했던가. 이때 과감히 북진(北進)을 감행하는 회사가 등장했다. 전남에 본사를 둔 보해였다. 보해는 1996년 3월 국내 최초의 프리미엄 소주 ‘김삿갓’을 내세워 전국구 진출을 선언했다.

프리미엄 소주는 당시 주를 이뤘던 일반 소주와 달리 꿀과 보리 주정 등 고급 원료를 써서 맛과 향을 차별화한 제품이다. 보해는 서울과 경기지역에 사업소를 내면서 유통망을 구축했다. 그 결과 김삿갓은 출시 한 달여 만에 100만 병 이상 팔리며 프리미엄 소주와 보해를 전국에 알렸다.

다른 업체들도 맞불을 놨다. 금복주는 그해 5월 ‘독도’를, 두산경월은 6월 ‘청산리 벽계수’를 출시했다. 하지만 시장은 진로가 그해 10월 출시한 ‘참나무통 맑은 소주’에 의해 정리됐다. 출시 50일 만에 1000만 병 이상이 팔렸다. 이듬해인 1997년 보해가 ‘곰바우’를, 두산경월이 ‘청색시대’를 내놓으며 시장 탈환을 노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프리미엄 소주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말 들이닥친 외환위기 때문이었다. 당시 진로에 몸담았던 홍보대행사 바움커뮤니케이션의 김상수 사장은 “프리미엄 소주의 식당 가격은 4000원으로 일반 소주(2000원)보다 비쌌지만 경기가 호황인 덕에 많이 팔렸었다”며 “외환위기 이후 지갑이 얇아진 고객들이 프리미엄 소주를 외면하면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존재감이 없어졌다”고 회고했다.

‘처음처럼’으로 전국구 안착한 롯데


수도권은 이후 한동안 다시 진로 천하가 됐다. 1998년 두산주류BG로 사명을 바꾼 두산경월은 그해 그린소주 1400만 상자를 팔아치우며 가정용 시장에서 수도권 시장 1위(판매액 기준)에 올랐지만 이후 내리막을 걸었다. ‘미(米)소주’, ‘산’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이다.

이랬던 두산에 다시 기회가 왔다. 2006년 출시한 ‘처음처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처음처럼은 세계 최초로 알칼리 환원수를 쓰고 알코올 도수를 20도 이하로 낮췄다는 점을 강조하며 독한 술을 저어하는 여심(女心)을 파고들었다. 2009년에는 롯데가 두산주류BG를 인수하며 ‘전국구 회사’ 지위를 굳혔다.

그 사이 지방에서는 소규모 전투들이 속속 벌어졌다. 부산 상권을 놓고 벌인 대선과 무학의 경쟁이 대표적이다. 2006년 ‘좋은데이’를 선보인 무학은 대선의 주요 주주가 2008년 사모펀드에 회사를 팔자 “공적자금을 받아 회생한 기업이 부산을 등졌다”는 논란이 일어난 틈을 파고들어 대선을 앞지르는 데 성공했다. 한때 점유율 90%를 넘길 정도로 부산 시장을 꽉 잡고 있던 대선은 점유율이 2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1990년대 말 이후에는 업체들의 이름도 많이 바뀌었다. 진로는 2005년 하이트에 인수된 뒤 하이트진로가 됐다. 두산경월은 1998년 두산주류BG로 사명을 바꿨다가 2009년 롯데에 인수되면서 롯데주류로 탈바꿈했다. 선양은 2013년 더 맥키스컴퍼니가 됐다. 대양은 백학, 하이트소주를 거쳐 2004년부터 충북소주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보배는 1997년 조선맥주(현 하이트진로)에 인수된 이듬해 하이트주조로 바뀌었다가 2010년 보배라는 사명을 다시 내걸었지만 2013년 11월 하이트진로에 완전 합병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순한 소주’ 경쟁… ‘처음처럼’ 17.5도로 낮춰


지방 회사들이 ‘집토끼’ 잡기에 주력하는 동안 수도권에서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의 경쟁이 지속돼 왔다. 하지만 이런 구도는 지난해 말부터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역 다지기에 성공한 업체들이 다시 수도권 진출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해의 ‘선봉장’은 올 초 출시한 아홉시반이다. 무학은 약 70%에 달하는 부산 울산 경남지역 점유율이 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올해부터 수도권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더 맥키스컴퍼니는 다양한 음료와 섞어 마시는 ‘맥키스’를 내세우는 우회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들에게 수도권은 전국구 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격전지다. 지역 인구 증가세가 주춤한 데다 음주 인구도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매출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면 수도권 공략만큼 확실한 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박찬승 보해 홍보팀 과장은 “수도권은 광주 전남의 4배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데다 음주 가능 인구의 약 43%가 몰려 있는 최고의 상권”이라고 말했다.

각종 여건도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영업망에만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고객 또는 점주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직접 제품을 주문하는 시스템처럼 약한 영업망을 보완해주는 각종 수단이 등장한 덕이다. 실제 보해 등은 홈페이지에 수도권에서 자사 소주를 판매하는 식당 및 주점 목록을 공개해 고객들이 손쉽게 자사 제품을 맛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여기에 주5일 근무제가 안착돼 주말마다 지방 여행을 다녀오는 이들이 늘면서 수도권 주민에게 지역 소주를 알릴 기회도 늘어났다.

물론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등 기존 업체들의 수도권 수성 의지도 만만치 않다. 폭음을 자제하는 분위기에 맞춰 순한 소주를 앞다퉈 내놓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이트진로는 이달 17일 참이슬의 알코올 도수를 18.5도에서 17.5도로 내렸고, 롯데주류도 다음 달 1일부터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17.5도로 기존 18도보다 0.5도 낮추기로 했다.이렇게 대한민국 최대 상권을 뺏고 지키려는 소주 업체들의 밤낮 없는 ‘전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창규 kyu@donga.com·김성모 기자
#참이슬#좋은데이#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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