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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선물]묵은세배로 한 해 보내고… 덕담으로 희망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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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선물]묵은세배로 한 해 보내고… 덕담으로 희망 챙기고…

동아일보입력 2014-01-22 03:00수정 2014-01-2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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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전후 세시풍습과 설 음식들

서양인에게 휴가와 축제의 계절은 여름이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겨울이 휴가와 축제의 나날이었다. 추수 뒤 농한기에 드는 겨울은 1년 중 가장 여유롭고 풍성한 계절이었다. 우리 명절이 겨울에 몰려 있고 겨울 시식(時食)이 여름 시식보다 더 풍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겨울 명절의 꽃은 설날이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보름간은 한 해를 시작하는 경건한 날이자 봄 농사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즐기는 한바탕 축제였다.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날로 ‘새로움’ ‘새 출발’의 의미가 강하지만 섣달그믐날 밤을 지새우고 맞으니 오히려 시간의 연속성이 강조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날 풍속은 섣달그믐의 풍속과 맞닿아 있다. 옛 사람들은 그믐날 집 안팎을 대청소하고 집안 구석구석 불을 밝히는 한편 한밤중에 대나무에 불을 지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는 밝은 불과 요란한 소리로 잡귀를 쫓는 도교 풍습에서 나왔다. 중국 사람들이 설날에 요란한 폭죽을 터뜨리는 것도 이 풍습에 기인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대포를 쏘고 무서운 방상시 가면을 쓰는 나례(儺禮·악귀를 쫓기 위해 베푸는 의식)를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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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습은 새해를 경건하기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남은 음식과 바느질감도 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새 출발을 위해 다 비우자는 뜻이다. 그믐날 먹는 비빔밥 역시 남은 음식을 정리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섣달그믐날 밤의 ‘묵은세배’

설날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음식들. 왼쪽 위부터 우족을 고아 만든 족편, 설날의 대표 음식 떡만둣국,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흰색의 떡국 떡, 그리고 명절에 빠지면 허전한 각종 전. 동아일보 DB
새해를 맞이하기 전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묵은세배다. 그믐날 저녁부터 시작하는 묵은세배는 설날 세배와 달리 먼 친척부터 가까운 어른 순으로 진행한다. 묵은세배를 설날 세배를 미리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묵은세배는 어디까지나 한 해를 보내는 인사로 설날 세배와는 엄연히 다르다. 설날 세배 때는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주지만 묵은세배 때는 아랫사람이 어른들께 돈이나 선물을 드린다.

그믐날에는 스승이나 처가에도 선물하는 풍습이 있는데 특별히 토산품을 보낸다. 오늘날 연말연시 선물 보내는 관습은 이런 전통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요즘엔 설날 아침의 세배를 흔히 차례를 지낸 다음 하지만 본래 집안 어른들께는 차례 전에 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매일 아침저녁 문안인사를 했는데 설날 아침인사는 새해인사이기도 하므로 세배(歲拜)라 불렀다. 차례 역시 예전에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에 올렸지만 이제는 설날과 추석에만 지내게 됐다.

설날에는 특별히 덕담이 오간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덕담은 때로 ‘스트레스’가 되고 있지만 예전 사람에게 새해 덕담은 단순한 인사말 이상의 강력한 힘을 지닌 언어였다. 서울지방에서는 “복 많이 받으셨다지요”처럼 모든 덕담을 과거형으로 했다. 기정사실화한 과거형이야말로 가장 강한 주술력을 발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새로운 시작, 흰색 떡국… 영양 만점, 신선로 족편 ▼
신성한 떡을 일상의 국으로 만든 기발한 발상


차례 상차림은 제사와 다를 바 없지만 특별히 떡국을 올리고(밥을 곁들여도 상관없다), 아침이므로 촛불을 켜지 않으며, 축문이 없고 헌작(술잔 올림)도 한 번으로 끝난다. 진설하는 음식과 형식은 고장마다 집안마다 조금씩 다르나 흰떡과 흰 떡국을 꼭 놓았다. 이북지방에서는 만둣국을 놓기도 한다. 개성에서는 액을 막는 의미로 조롱박 모양의 조랭이떡국을 만든다. 충청도 지방의 생떡국은 떡을 쪄내지 않고 새알심처럼 쌀가루를 즉석에서 반죽하여 가래떡 모양으로 민 다음 썰어서 끓인 것이다.

떡국도 지역별로 개성이 넘친다. 위쪽부터 미역생떡국(충북), 두부떡국(전북), 굴떡국(경남), 조랭이떡국(개성) 동아일보 DB
모양이야 어떻든 설날의 떡이나 만두는 죄다 흰색이다. 동지 팥죽의 붉은색이 액을 막는 뜻이라면 떡국의 흰색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긴 가래떡은 장수를 뜻하고 떡을 둥글게 썬 것은 돈이나 태양을 상징한다는 말이 있지만, 떡을 국물에 익힐 때는 얇고 둥근 모양이 가장 효율적이니 그리했을 것이다. 과학적인 이유야 어쨌든 그런 해석은 나름의 의미를 주는 이야기다.

떡국 모양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떡을 국으로 끓여먹는 기발한 발상이다. 본래 떡은 제사에 올리는 신성한 음식인데 떡을 일상식인 국으로 만들어 먹는다는 것은 신성함을 일상 안으로 끌어들인 시도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설날만큼은 우리 인간도 신성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떡국을 먹는 것은 신성함을 내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만큼 성숙함을 의미한다. 떡국 그릇 수가 곧 나이여서, 흔히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떡국은 양념이 강하지 않은 장김치와 먹어야 맛이 죽지 않는다. 또 다른 설날 특식은 신선로나 녹두전으로, 모두 겨울 음식이다. 고기 요리로는 갈비찜과 족편이 있다. 족편은 소의 발 부분을 고아 젤라틴을 얻은 다음 생강 후추 잣 파 깨 등을 넣고 다시 고은 후 응고시켜 흰색과 황색의 달걀지단, 검은 석이버섯채, 빨간 실고추, 푸른 파 등 오방색으로 장식한 멋진 음식이다. 동물 발에서 나온 음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품위가 있다.

음료로는 설날과 대보름 기간 약재를 넣어 만든 약주를 차게 마셨는데, 액을 막고 귀를 밝힌다고 믿었다. 식혜와 수정과는 지금도 해먹는 음료로 특히 수정과는 겨울에 맛나다. 과자류로는 유과, 약과 그리고 특별히 도라지나 연근, 동아(모양이 무와 비슷한, 박과 식물의 열매) 등을 꿀에 조려 만든 정과와 오미자나 과일로 만든 편(젤리류)도 먹었다. 그러나 곡식으로 만든 강정이 겨울 과자의 꽃이었다. 이렇듯 풍성한 설날 명절은 대보름까지 보름 동안 일진에 따라 날마다 금기와 놀이를 달리하며 전통 명절 가운데 가장 길고 화려한 축제 기간을 이어간다.

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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