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흥모]독일인들은 왜 메르켈을 사랑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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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모 독일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 아주대 강사
정흥모 독일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 아주대 강사
독일 총선이 9월 22일 있었다.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가 최고 성적을 내며 선거의 여제가 됐다. 이번 선거는 1990년 선거 이후 기독민주당이 거둔 가장 압도적인 승리다. 물론 단독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의 압승은 아니다. 또 연정 구성 및 각료 선임 같은 난제를 풀어가야만 한다.

우리의 남다른 관심은 독일 정당들의 성적표가 아닌 ‘정치인 메르켈’에게 있다. 이번 선거는 기민당의 승리가 아니라 ‘안지’(메르켈 총리의 애칭)의 승리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메르켈의 무엇이 2017년까지 12년 최장수 여성 총리를 가능하게 했을까. 사실 정치 지도자가 오랜 시간 시민의 사랑과 선택을 받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것은 그녀의 리더십이다.

‘영국의 대처’와 ‘독일의 대처’를 비교 분석하면 손쉬워진다. 먼저 마거릿 대처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현장으로 가져가 이를 입증하려는 이론가형 정치인이었던 반면에 메르켈은 현장의 분위기를 파악하여 이를 정치에 활용한 실용주의적 정치인이다.

메르켈은 이념보다 점진주의적(step by step) 시행착오의 방법으로 정치적 목적을 관철해 나가는 유연한 정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역으로 이 같은 정치적 기질 때문에 당내에선 당의 정체성을 해친다거나 당 밖에선 집권에 대한 욕심밖에 없어 보인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둘째로 정치 스타일을 들 수 있다. 일부 비판자는 메르켈을 ‘정책의 도용자’ 또는 메르켈벨리안주의(merkelvellianism·메르켈+마키아벨리즘)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민당이라는 당 정체성을 벗어나 좌편향, 즉 사민당과 녹색당의 어디쯤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당 내의 볼멘소리다. 메르켈을 독일의 마피아적 대모(godmother)라고 힐난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메르켈은 “기민당은 정책을 줄곧 바꿔왔다. 그러나 지지자는 이에 대해 성내지 않는다”고 오히려 대꾸한다.

한편 일각에서는 정치 지도자 하면 연상되는 카리스마를 메르켈은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메르켈은 카리스마를 ‘새로운 형태’로 그려나가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자신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내지 않고 묵인한다. 또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충분히 인내할 줄 안다. 이 점이야말로 메르켈만의 카리스마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메르켈의 정치적 성공은 대중성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기성 정치가와 달리 성량은 작으나 평이한 말을 구사하고, 말을 하기보다 경청하며, 안에선 온화하나 밖에선 단호하다는 데서 대중의 호감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메르켈에겐 ‘엄마(무티·mutti, mummy)’란 별명도 있다. 이 별명은 영국의 대처가 선각자적 여성 정치인으로 자신을 인지한 것과는 다르다. 메르켈의 별명은 여성이 자신의 나라를 정상적으로 동요 없이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대중의 믿음과 신뢰가 응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여성이면 또 다른 메르켈이 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인물이 제도나 이념에 우선하는 것이 꼭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번 선거에서 독일인들의 선택은 달랐다.

조용한 카리스마에 정치적 실용주의자라 하더라도 국가와 시민에게 안녕과 편안함과 신뢰를 심어 주는 것이, 무늬만 카리스마에 튀는 이념형 정치가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흥모 독일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 아주대 강사
#앙겔라 메르켈#독일 총선#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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