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1등 어딜것 같소… 의외겠지만 ‘뱅뱅’이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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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버틴 토종 청바지… 80세 권종열 회장의 ‘뚝심 경영’

권종열 뱅뱅 회장(80)이 젊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빨간색 반바지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권 회장은 “아흔 살까지 뱅뱅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권종열 뱅뱅 회장(80)이 젊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빨간색 반바지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권 회장은 “아흔 살까지 뱅뱅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어휴, 옷 장사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1970년대부터 40여년 동안 수많은 청바지 브랜드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소리 없이 사라졌다. 1980년대의 ‘죠다쉬’, 1990년대의 ‘보이런던’ ‘GV2’ ‘겟유즈드’ ‘닉스’ 등은 세월이 흐르면서 전성기의 인기를 잃었다.

19일 서울 강남역 인근 뱅뱅사거리에 있는 ‘뱅뱅어패럴’ 본사에서 권종열 뱅뱅 회장(80)을 만났다. 그는 “52년 동안 옷 장사를 하면서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옷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유명 해외 브랜드 청바지가 국내 1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실제 국내 청바지 시장의 1위 브랜드는 뱅뱅이다. 뱅뱅의 지난해 매출액은 2300억 원이다. 여기에는 “뱅뱅은 1%를 위한 옷이 아니라 99%가 부담 없이 합리적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권 회장의 경영 철학이 깔려 있다.

○ 43년 버틴 토종 청바지

“갑자기 잊혀지고 부도나는 패션 회사를 여럿 봤어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최고경영자(CEO)가 현장에서 원단부터 꼼꼼히 챙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권 회장은 지금도 한 달에 서너 번씩 중국 공장을 찾는다. CEO가 가야 일이 빨리 해결되고 현장에서 좋은 원단을 쓴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지금도 시장조사를 하러 직접 매장을 돌아다닌다.

권 회장이 현장을 놓지 않는 이유는 그 자신이 시장에서 직접 옷을 만들어 팔아 봤기 때문이다. 그는 1961년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다.

권 회장의 고향은 평양이다. 17세, 1·4후퇴 때 13세 동생과 둘이서 유엔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뭐든지 열심히 해 살아남아야 했다.

다행히 따로 월남해 대구에서 노트 사업을 하던 큰형을 휴전 직후 만나게 됐다. 형의 공장에서 밤낮으로 일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동대문 옷 장사가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평화시장에서 2평짜리 가게의 세를 얻었다. 처음부터 직접 봉제까지 도맡아했다. 만들 줄 알아야 팔 줄도 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권 회장은 “1970년대 초 한국산 데님 원단이 처음 나오자 ‘이거다’ 싶어 뱅뱅이라고 이름 짓고 본격적으로 청바지를 만들어봤다”고 말했다. 뱅뱅이란 이름은 서부영화에서 총을 쏘는 소리에서 왔다.

○ 이제는 글로벌 SPA와 경쟁

“1982년 ‘죠다쉬’ 청바지 매장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우리 청바지는 4000원인데 죠다쉬는 2만4000원에 팔리더라고요. 품질은 비슷했는데…. 시장을 나와 수입 브랜드와도 경쟁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 회장은 그 길로 제일기획을 찾아갔다. 광고를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회사 규모로 볼 때 어려울 것 같다’는 거절의 말이 돌아왔다. 그는 방송국에 도와달라고 말했다. 의외로 한 PD가 제작을 맡아줬다. 곧 당대의 스타 가수 전영록이 나오는 광고가 전파를 탔고 뱅뱅은 큰 인기를 누렸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위기가 찾아왔다. 대리점 300곳 중 절반 이상이 장사를 못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격을 더 낮춘 기획상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외환위기에 지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췄다. 당시 700억 원까지 떨어졌던 매출은 2000년대 들어 다시 1000억 원대를 회복했다. 권 회장은 “올해는 3000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의 위기는 글로벌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의 ‘습격’이다. 권 회장은 “한국 백화점들이 해외 SPA에는 300평을 내어 주고, 국내 브랜드에는 10평 남짓만 빌려주니 경쟁이 되겠느냐”면서도 “그래도 유니클로에 배울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직영 매장을 100평 규모로 키우고 있다”며 “그런 매장들을 고객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커버하는, 청바지 이외에도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는 ‘원스톱 매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청바지#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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