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물로 보는 헤드헌터의 유혹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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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만 1200여 업체 난립… 달콤한 조건 내세우며 무차별 문자
알고보면 연봉-대우 거품투성이, 몰래 이력서 낸 직장인들 “너무 불쾌”
구인 의뢰업체도 “미자격자 추천에 당혹”

‘박○○ 님, A그룹 업무 경력자 채용 건으로 연락드립니다.’

지난해 이직한 박모 씨(34)에겐 요즘도 일주일에 평균 한 번은 헤드헌터들의 문자메시지가 날아든다. 그가 이직을 준비하는 동안 대형 취업포털에 올렸던 문의 글을 보고 헤드헌터들이 계속 연락해 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는 박 씨는 “나 말고도 수십 명에게 똑같은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괜히 마음만 뒤숭숭해지는 것 같아 헤드헌팅 메시지를 아예 스팸메시지로 등록했다”고 말했다.

‘인재 사냥꾼’으로 불리는 헤드헌터들이 직장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헤드헌팅은 불황 속에서 유독 활기를 띠는 직업이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기업들이 신규 채용보다는 경력직을 늘리고, 개인들도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꿈꾸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1980년대 후반 처음 도입돼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업계는 시장 규모를 약 3000억 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별도의 자격증이 필요 없고, 영업하는 데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자영업 형태의 ‘1인 헤드헌터’들이 최근 크게 늘어났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헤드헌팅 업체 수는 1200여 개에 이르지만 직원이 30명 이상인 대형 업체는 10여 개에 불과하다.

‘초보 헤드헌터’들을 위한 전문 학원도 생겨났다. 한 헤드헌팅 입문 학원 관계자는 “취업에 실패한 청년 구직자나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3시간에 8만 원을 내고 강의를 들으면 누구나 헤드헌터로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헤드헌팅 홈페이지에 회원 가입을 한 뒤 기업정보를 얻어 ‘사이버 헤드헌터’로 활동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면서 영업 경쟁이 점차 치열해져 이직의 꿈을 꾸는 직장인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직장인들의 이력서를 받고도 아무런 피드백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직장인 B 씨는 5명의 헤드헌터에게 연락을 받고 그 가운데 3명에게 자신의 이력서를 보냈지만 그 뒤로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B 씨는 “다니고 있는 회사에 들킬까 봐 눈치 보며 몰래 이력서를 냈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아무런 피드백이 없어 황당하다”며 “개인정보만 털린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헤드헌터가 약속했던 연봉이나 대우가 실제 이직한 회사가 제안한 조건과 심하게 다른 사례도 적지 않다. 보험판매사인 C 씨는 “연봉을 20% 가까이 올려준다는 조건으로 헤드헌터를 통해 이직했지만 회사 규모가 이전 회사보다 작고 근무 여건이 열악해 1년도 안 돼 그만뒀다”고 말했다.

직장인뿐 아니라 기업들도 고민이 많다. 한 기업 입사담당자는 “자격이 없는 헤드헌터들이 판을 치다 보니 구직자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며 “신생 헤드헌터들이 믿을 만한지 파악하느라 적잖은 시간을 빼앗긴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직장인들도 무조건 믿고 이력서를 맡기기에 앞서 해당 헤드헌터 및 업체의 경력, 규모 등을 반드시 조사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커리어앤스카우트의 최원석 대표컨설턴트는 “헤드헌팅 업체가 제대로 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DB) 시스템을 갖췄는지, 홈페이지에 헤드헌터들의 경력을 투명하게 공개해 놓았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정보기술(IT), 제약 등 전문 업종은 헤드헌터들이 그 분야를 충분히 알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신지후 인턴 기자 숙명여대 언론정보학 4학년
#헤드헌터#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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