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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최민수와 윤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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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최민수와 윤창중

동아일보입력 2013-05-23 03:00수정 2013-05-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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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
지금껏 내가 인터뷰한 숱한 유명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을 꼽으라면 최민수와 앙드레 김이다. 한 사람은 배우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젠 고인이 된 패션디자이너이지만, 두 인물에겐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한번 말을 하기 시작하면 내가 도무지 끊을 수가 없는 인물이라는 점. 질문 하나를 던지면 답변 시간이 20분이 넘는 경우도 있으니! 그만큼 자기 내면과 철학이 강한 독특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민수에 관해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인터뷰 중 “인생철학이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이런 기괴한 답변을 하였다. “저의 철학이라…. 바로 ‘무시로’이지요. 없을 ‘무(無)’, 시간 ‘시(時)’, 길 ‘로(路)’. ‘나그네가 가는 길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요. 세상에 놓인 나라는 존재는 그저 왔다가 가는 나그네일 뿐이니까….”

뭔 얘기인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무지하게 감동 먹은 나는 “형님께 많은 배움을 얻어갑니다”라고 말해버리고 말았고, 이에 최민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에요. 서로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는 것이지요. 허허”라고 무슨 신선 같은 답을 하였다.

나는 최민수야말로 ‘이미지 정치’의 달인이요, 최고권위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언뜻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자폐적 인물인 듯 보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대중의 마음속에 자신을 어떻게 자리 잡도록 만들지를 제대로 아는 영악하리만큼 지혜로운 인물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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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70대 노인을 폭행하고 자신의 차량에 매단 채 운전한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었다. 길에 불법주차한 차를 향해 그가 욕설을 했고, 이를 듣고 “젊은 사람이 그러면 되느냐”고 꾸짖는 노인을 폭행한 혐의였다. 최민수는 “폭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언론들은 첫날부터 ‘최민수 노인폭행 파문’ ‘연예인 폭력, 도를 넘었다’ 같은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사흘 뒤 최민수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무릎을 꿇으면서 그는 말했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이번 일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국민 앞에서 떳떳하고 정당해야 할 배우가 그렇게 못했습니다. 내 자신이 나를 용서 못하겠는데 누가 용서하겠습니까? 무슨 변명을 늘어놓겠습니까? 어제 경찰서에서 진술했습니다. 피해 노인 분도 진술했습니다. (저와 진술이) 일치 안 된 부분이 있다면 내 잘못입니다. 도주, 폭행 등은 사실이 차후에 밝혀질 것입니다. 만약 사실로 밝혀지면 여러분께서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중략) 마지막으로, 주은아, 내 사랑하는 아내, 미안하다. 이건 아니잖아….”

이후 사건을 조사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최민수는 산속으로 들어가 2년간 칩거했다. 지난해 방송 토크쇼에 출연한 그는 “무혐의라는 걸 자신이 가장 알 텐데 왜 기자회견에서 무릎을 꿇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억울한 건 내 사정일 뿐이다. 일단 나이 든 분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자체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 이 얼마나 놀랍도록 똑똑한 판단이란 말인가. 사건의 진위야 어떠하든 사람들이 일단 ‘저놈 죽일 놈’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딱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어딜 만져요” 하고 여성이 외칠 때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놈이 사람 치네” 하고 노인이 소리칠 때다. 당시 나의 의도가 어떠했든 그것은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나를 바라보는 대중의 비딱한 시선, 이것이 바로 본질이다. 이미지를 먹고사는 배우이자 공인으로서 최민수는 이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고, 그는 과하게 사죄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방식을 통해 오히려 진심을 대중에게 알리는 놀라운 위기관리를 했던 것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부터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라며 사사건건 ‘팩트’ 위주로 해명을 하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꾸만 최민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만약 ‘억울한 건 내 사정’이라는 생각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가 만약 “사건의 실체는 미국 경찰조사에서 밝혀지겠지만, 이를 떠나 이런 문제를 일으킨 자체로 나는 죽일 놈입니다. 국민들께선 저를 결코 용서하지 마십시오”라고 ‘무조건’ 사죄하면서 아내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90%의 억울함보다는, ‘나를 향한 대중의 비판적인 시선’이라는 10%의 사실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자가 진짜 사나이가 아닐까. 이 순간,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에서 김상중이 던진 명대사가 퍼뜩 떠오르는 것이다.

“정치라는 건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거지….”

이승재 기자 sjde@donga.com
#최민수#윤창중#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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