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 대비 실탄 확보하라”… 사옥 파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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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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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부터 건설사-금융사까지 현금 확보 나서

2012년 11월 6일 SK텔레콤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반 토막 난 3분기(7∼9월) 영업이익을 투자자들에게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날 안승윤 경영지원실장은 “남산그린빌딩과 장안, 구로 사옥 등 세 곳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이 포스코 지분을 4400억 원에 내다판 지 한 달 만에 사옥 매각에 나서자 ‘구조조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3개 사옥은 지난해 12월 약 3000억 원에 국민연금 등이 투자한 부동산펀드로 넘어갔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돈줄이 마른 기업들이 사옥을 팔아 실탄 확보에 나서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에 나선 대기업부터 경영난에 시달리는 건설사·금융회사들까지 줄줄이 사옥을 팔아치우고 있다. 재계는 이런 추세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사옥 팔아 현금 확보

대기업들의 사옥 매각은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두드러졌다. 현대그룹은 2012년 7월 서울 종로구 연지동 본사 사옥을 2262억 원에 내다팔았다. 이어 CJ그룹이 경기 성남시 분당구 CJ E&M 빌딩, 인천 송도 CJ시스템즈 IT센터, 경남 양산시 밀가루공장 등을 팔아 1500억 원을 마련했다.

이철희 동양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하반기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기업들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면서 사옥 매각이 본격화됐다”며 “위기 땐 유동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동안 가격이 오른 상업용 부동산을 먼저 매각했다”고 분석했다.

위기에 빠진 중소 건설사와 저축은행도 사옥을 팔아 ‘급한 불’을 껐다. 동일 신일건업 태양종건과 토마토저축은행 한신저축은행이 지난해 사옥을 매각했다.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에 들어간 풍림산업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본사 빌딩 매각을 추진 중이고,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인 삼환까뮤도 1월 말 서울 여의도 사옥을 팔 계획이다.

증권업계에선 동양증권이 서울 중구 을지로 본사 사옥을, 대신증권이 서울 강남구 도곡동 사옥을 각각 팔았다. 임홍성 교보리얼코 투자자문팀장은 “올해 경기 회복이 불투명해 전 업종에 걸쳐 사옥 매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 “사옥 팔면 기업경쟁력 개선”


이렇게 나온 사옥들은 저금리 탓에 투자 대상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기금 등 큰손들의 차지가 됐다. 매물 중 상당수가 부동산펀드와 리츠에 팔렸고, 여기에 연기금 공제회 생명보험사 등이 가세했다.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들이 ‘세일즈 앤드 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조건으로 사옥을 파는 것도 눈에 띈다. 기업이 매각한 사옥을 빌려 그대로 쓰는 방식이어서 투자자의 임대수익률을 보장해줄 수 있다. 김기봉 국민연금 대체투자팀 선임운용역은 “쇼핑몰 같은 건물에 비해 사옥은 자산가치가 안정적이고 임대가 보장된다. 투자 다변화 차원에서 사옥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옥 매각이 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불필요한 고정자산을 정리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주력 사업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본업과 관련된 자산을 팔면 미래 성장에 해로울 수 있지만 사옥 매각은 그렇지 않다”며 “자산 구조뿐만 아니라 사업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사옥매각#경기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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