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식품 호기심 천국]오래도록 두고 삭힌 홍어, 먹어도 왜 탈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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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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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결혼식 피로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칭 ‘홍어회 마니아’라고 말하던 한 친구가 피로연에 나온 홍어회를 집에서 먹겠다고 한가득 담아갔다. 아직도 흐뭇해하던 그의 표정이 떠오른다.

생명체가 죽은 직후엔 호흡이 없어지면서 그 몸이 단단해진다. 이후엔 경직이 풀려 물러지면서 부패한다. 그런데 홍어는 왜 오래 지나서 먹어도 탈이 나지 않을까.

○ 삭힐수록 더 좋아

물고기가 죽은 뒤에는 ‘자기소화’(자신이 가지고 있는 효소에 의해 자신의 조직이 분해되는 과정)가 일어난다. 자기소화가 진행되면 세균에 의한 부패가 시작되면서 육질이 물러지고 부패해 썩은 냄새가 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자기소화 속도를 조절만 할 수 있으면(물론 천천히) 생선의 맛을 좋게 유지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생선을 저온에 냉장보관을 하거나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이다. 막 썰어낸 생선회를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고등어를 소금으로 간을 해 보관하면 부패가 방지되고 맛도 좋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냉장보관도 자기소화를 늦출 뿐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생선살이 세균에 의해 부패해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왜 홍어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먹어도 괜찮을까.

바다 물고기는 체내에 여러 가지 화합물을 저장해 체내 수분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진화했다. 화합물은 물고기 종류에 따라 다른데, 80∼100m 깊이의 바다에서 바닥을 유영하는 홍어는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한 물질로 요소(尿素)를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다. 홍어를 삭히는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이때 삼투압 조절 물질로 쓰였던 요소가 요소분해효소(urease)에 의해 분해되는데, 그 결과 암모니아가 생성된다.

암모니아는 불쾌한 냄새를 풍기지만 세균의 증식을 막는 작용을 한다. 죽은 홍어를 보통 10도 이하의 냉장 상태에서 5, 6일 두면 체내 암모니아가 증가해 pH(수소 이온 농도 지수)가 8.5 이상으로 높아져 강알칼리성이 된다. 부패 세균이나 식중독 세균은 강알칼리성 상태에서 증식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삭힌 홍어를 먹어도 배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 영양도 만점

많은 사람이 특유의 냄새와 맛을 좋아해 삭힌 홍어를 먹는다. 홍어는 영양 면에서도 탁월한 식품이다. 홍어의 살과 간에는 불포화지방산이 75% 이상 함유돼 있다. 그래서 홍어는 두뇌를 맑게 하고 혈전 생성을 억제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또 홍어는 관절염이나 뼈엉성증(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한방에선 홍어가 장을 깨끗하게 만들어 소화를 촉진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전은 저서 ‘자산어보’에서 홍어의 효과를 이렇게 기록했다. “홍어로 국을 끓여 먹으면 몸 안의 더러운 성분을 제거할 수 있고, 술의 기운도 없앨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삭혀 먹는 생선은 홍어만 있을까.

정답은 노(no). 홍어와 같은 연골어류인 상어, 가오리에도 요소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 따라서 유사한 화학반응에 따라 삭혀 먹을 수 있다.

이근배 신세계백화점 상품과학연구소장(식품기술사) kblee0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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