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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그후 10년, 삶이 달라진 사람들]<3>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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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그후 10년, 삶이 달라진 사람들]<3>용서

기타입력 2011-09-06 03:00수정 2011-09-0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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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테러에 희생됐거나, 테러로 종신형 받거나… 어머니에겐 모두 마음의 짐”
아들잃은 여인이 먼저 손 내밀다
9·11테러로 아들을 잃은 로드리게스 씨(왼쪽)와 종신형을 선고받은 테러범의 어머니인 엘와피 씨. 로드리게스 씨는 “둘 다 똑같이 아들을 잃은 어머니인데 나는 동정이라도 받지만 엘와피 씨는 동정조차 못 받지 않느냐”며 아들을 죽인 테러범의 어머니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분노와 고통으로 실어증에 시달리기도 했던 로드리게스 씨는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면서도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콰드리가 웹사이트
미국 뉴욕에 사는 필리스 로드리게스 씨(68·여)는 언제나 오른쪽 팔목에 은색 팔찌를 차고 다닌다. 팔찌에는 ‘그레그’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9·11테러로 사망한 아들 이름이다. 집 서재에도, 냉장고 문에도 스포츠를 좋아했던 아들이 스키나 하이킹을 하며 활짝 웃는 사진이 걸려 있다. 아들이 떠난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사진을 보는 것은 힘들다.

그런데 서재의 아들 사진 옆에는 한 중년 여성의 사진이 걸려 있다. 아이샤 엘와피 씨(64·여).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여인이다. 아들 사진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힘들지만 친구 사진을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 친구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9·11테러 가담자의 어머니다. 엘와피 씨의 아들 자카리아스 무사위(43)는 현재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파트타임 교사였던 로드리게스 씨는 산책을 마치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수위에게서 세계무역센터(TWC)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당시 31세였던 아들은 이 빌딩 103층 캔터 피츠제럴드 증권회사 부사장이었다. 서둘러 전화기로 달려가니 자동응답기에 “큰 사고가 났지만 괜찮다”는 아들 목소리가 남겨져 있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들 소식을 기다렸지만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시신도 찾지 못했다.

외아들을 그렇게 떠나보낸 어머니는 분노와 고통으로 한동안 실어증을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 모로코 출신 여인의 기사를 봤다. 그 여인이 바로 엘와피 씨였다. 그의 아들 무사위는 2001년 미국으로 건너와 미니애폴리스 비행학교를 다니다 테러 발생 3주 전 이민법 위반으로 체포된 상태였다. 테러에 직접 가담하진 않았지만 공격 계획을 사전에 공모한 혐의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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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게스 씨는 엘와피 씨에게서 묘한 친밀감을 느꼈다. 그것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상실감이었다. 자신의 아들은 테러로 죽고 엘와피 씨의 아들은 테러에 가담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됐으나 똑같이 아들을 잃은 것 아닌가.

1년 후 뉴욕 살인가족화해협회(MVFR)라는 시민단체로부터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미국에 오는 엘와피 씨를 만나보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 로드리게스 씨가 남편과 함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뉴욕타임스에 보낸 ‘전쟁 반대’ 편지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연락이 온 것이다.

‘두 어머니’는 2002년 10월 뉴욕 근교에 있는 한 대학의 빈 강의실에서 만났다. 가해자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제 아들이 직접 테러에 가담하진 않았지만 이슬람 과격주의에 빠져 미국 사회에 증오의 분위기를 만든 데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만남이었지만 아들의 사진을 서로 돌려보며 3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로드리게스 씨는 엘와피 씨가 프랑스에서 청소부로 일했으며 자녀 4명과 함께 정신이상 증세가 있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러운 아랍’이라는 주변의 조롱을 들으며 자란 무사위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영국으로 건너가 이슬람 과격주의에 빠져들었고 아프가니스탄 알카에다 캠프에도 참가했다.

로드리게스 씨는 엘와피 씨가 프랑스로 돌아간 후에도 전화와 e메일로 소식을 교환했다. 요리, 바느질,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공동 관심사였다. 주변에선 그런 로드리게스 씨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유가족은 “삐뚤어진 평화주의”라며 “테러의 책임을 테러범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드리게스 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둘 다 똑같이 아들을 잃었는데 나는 동정이라도 받지만 엘와피 씨는 동정조차 못 받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처음에는 아들을 죽인 테러범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지금도 테러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행위를 하게 됐는지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용서가 가능해지더라”라고 말했다.

무사위는 사건 발생 3개월 후 9·11테러 연루자론 처음으로 테러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 로드리게스 씨는 2006년 3월 무사위의 재판 방청을 위해 미국에 온 엘와피 씨에게 자신의 집에 머물 것을 제안했다. 무죄를 계속 주장하던 무사위는 재판을 앞두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재판에서 ‘9·11테러 같은 공격이 매일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증언하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무사위는 현재 콜로라도 감옥 독방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사연은 진보성향 주간지 빌리지보이스(2006년 8월), 타임(2009년 7월)에 잇달아 소개됐으며 최근 야후 뉴스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2007년 독일 비영리단체 ‘베르크슈타트 도이칠란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개척정신을 갖춘 인물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콰드리가’ 상을 두 어머니에게 수여했다. 로드리게스 씨는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데즈먼드 투투 주교가 얘기했듯이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분노와 증오를 걷어가기 때문입니다. 엘와피 씨를 용서하면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이 잘못되면 죄책감을 느끼니까요.”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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