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찹쌀과 고기가 씹히는 맛… 왜 진작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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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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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대


‘뜨거운/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혼자라는 건/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힘든 노동이라는 걸/고개 숙이고/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소리를 내면 안돼/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최영미의 ‘혼자라는 건’에서>
늦은 저녁, 혼자서 순대국밥을 사먹는 여인의 심정은어떨까. ‘굶주린 사내들의 눈총’을 받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가만가만 조심스럽게, 후루룩! 딸그락! 소리도 내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숟가락을 입에밀어 넣는, 그 여인의 마음속은 그야말로 푹 삶아진 ‘순대속’일 것이다.

재래시장 후미진 귀퉁이엔 어김없이 김이 펄펄 나는 집이 있다. 자욱한 김이 안개처럼 골목길을 자욱하게 휘감아 돈다. 커다란 솥에서 구수한 냄새가 끊임없이 솟아난다. 보나마나 순대집이다. 간판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뚝배기에 가득 담긴 순댓국 한 사발을 깍두기나 묵은지를밑반찬삼아 뚝딱뚝딱 해치운다. 끄윽! 끄윽! 신트림을 해댄다. 몇몇 사내들은 그걸 안주 삼아 소주를 털어넣으며 고단한 하루를 마감한다.

순대는 가축의 창자 속에 찹쌀, 두부, 숙주, 파, 표고버섯, 고기 등을 이겨서 채워 넣고 찐 음식이다. 1670년경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엔 개의 창자에 다진 개고기를 넣어 만드는 ‘개장(犬腸)’ 이야기가 나온다.‘

개의 내장을 뒤집어서 깨끗하게 씻은 후에 다시 뒤집는다. 이 창자 속에 다진 고기를 채워 넣는다. 시루에 넣고뭉근한 불로 오랫동안 찐다. 완성된 것은 어슷썰기하여 식초와 겨자씨로 맛을 내면 각별하다.’

소창자에 다진 닭고기와 꿩고기를 넣어서 찌는 우장증(牛腸蒸), 명태의 배 속에 여러 가지 소를 채워 먹는 함경도 명태순대, 강원도 속초에 정착한 함경도 실향민들이만들어 먹기 시작한 오징어순대 등도 있다.

요즘 순대는 돼지 작은창자에 선지 당면 숙주 등을 밀어넣고 양 끝을 묶어 쪄 낸다. 당면 대신 찹쌀을, 숙주 대신양배추를 넣기도 한다. 파 마늘 생강 참기름 등으로 비린내를 없앤다. 순댓국은 뚝배기에 삶은 소면, 돼지머리 눌린 것, 삶은 내장 등을 썰어 넣고, 돼지 뼈 삶은 육수를 부어 끓인 뒤, 양념장을 넣어 밥과 함께 먹는다. 순대나 서양소시지나 맛이 약간 다르지만, 만드는 방법은 비슷하다.

대한민국엔 ‘3대 순대천왕’이 있다. 경기 용인 백암순대, 속초 청호동 함경도 아바이순대, 천안 병천순대가 그것이다. 백암순대는 ‘뼈있는 순대’로 통한다. 오독오독 씹는 맛을 내기 위해 머리고기를 완전히 갈지 않고 순대 속에 넣기 때문이다. 돼지 작은 창자를 쓰고, 당면이 적다.선지도 약간만 넣는다. 제일식당(031-332-4608).

속초아바이순대는 돼지 큰창자를 쓴다. 순대가 다른 곳보다 굵다. 선지를 적게 쓰는 대신 찹쌀이 많다. 당면을 쓰지 않는다. 색이 밝다. 머리고기는 곱게 갈아서 볶은 후넣는다. 식감이 부드럽다. 단천식당(033-632-7828).

천안병천순대는 선지를 백암이나 속초아바이순대보다많이 쓴다. 색이 유난히 검붉다. 당면도 많이 쓰며, 머리고기와 비계는 곱게 갈아 넣는다. 충남집(041-564-1079).

서울엔 강남 삼성동 박서방네순대국(02-568-9205), 돼지막창 왕순대가 이름난 서대문 연희동의 백암순대(02-337-7894), 동작구 신대방동의 서일순대국(02-821-3468), 강남도곡동의 서초순대국(02-574-3227), 선지를 넣지 않는 동대문제기동 오소리순대(02-918-9797), 숙주와 파가 유난히 많이 들어가는 종로 평동의 함경도아바이왕순대(02-725-2788), 중구 회현동의 철산집(02-753-4861) 등이 있다.

일본사람들은 순대에 대한 공포감과 거부감이 있다.돼지 피를 응고시켜 창자에 밀어 넣은 끔찍한 요리’로 생각한다. ‘거뭇거뭇하고 기분 나쁜 음식’으로 여긴다. 옛날일본 사람들은 동물내장을 이용한 요리를 꿈에도 생각할수 없었다. 1871년에야 비로소 법률로 소, 말, 개, 닭, 원숭이 5개 동물의 육식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순대 하나를 입에 넣자, 생각과는 달리 피나 내장의 비린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찹쌀과 고기를 씹는 맛이 아주 좋았다. 놀랍게도 상당히 맛있었던 것이다. 처음 먹어본 순대는 서양의 소시지 같은 고기 맛이 아니라 간식으로 먹는 스낵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의외로 맛있다고 느꼈기에 다 먹고 나서는 ‘에이, 뭐야∼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먹을걸’하며 바보처럼 선입견에 얽매여 있던 것을 후회했다.’
<책 ‘내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음식’중오오가와 요시유키의 ‘순대국밥’에서>
중국 사람들은 순대를 좋아한다.한국에 오는 관광객들은 거리낌 없이 순대국밥을 즐겨 먹는다. 그들은 6세기에 양의 창자로 만든 순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몽골의 전투식량도 ‘게데스’라고 부르는 순대였다. 칭기즈칸 군대는 돼지창자 속에 쌀과 채소를 넣고 삶아서 말리거나 냉동해 말에 매달고다니며 바람처럼 싸웠다.

요즘 순대는 갈수록 선지가 적게 들어간다. 순대를 즐기는 젊은 여성들이 그걸 꺼려하기 때문이다. 선지는 돼지 피다. 돼지 피가 신선할수록 순대가 구수하고 들큼하다. 오래된 것은 쇳내가 난다. 요즘 순대집에선 신선한 선지를 구하느니, 아예 살짝 순대 속에 바르는 정도로 흉내만 낸다. 그만큼 돼지 피의 고소한 맛이 없다.
순대는 짝이 있다. 순대만 먹으면 뭔가 허전하다. 돼지간, 허파, 콩팥, 위’를 섞어 먹어야 비로소 순대 맛이 살아난다. 위는 포장마차에서 흔히 ‘귀때기’로 불리는 것이다. ‘오소리감투’라고도 한다. 약간 퍽퍽하면서도 고소한간, 쫄깃쫄깃한 콩팥,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허파, 담백하면서도 오묘한 맛의 위. 어느 것 하나 빠질 수 없다.

순대집은 누가 뭐래도 재래시장 할머니순대집이 으뜸이다. 서울 종로5가 광장시장 먹자골목 같은 곳이 그렇다. 할머니집순대(02-2274-1332), 공주집(02-2275-0708), 광장순대국밥집(02-2279-8796)은 사람냄새로 훈훈하다. 사내들이 퍼질러 앉아 밑도 끝도 없는 세상을 안주로 소주를 푼다. 밖엔 왕벚꽃 같은 눈이 날리고 있다. 누군가 고은 시인의 ‘오일장장터’라는 시 구절을 읊조린다. 목소리가 축축이 젖는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미안하다/미안하다/나 같은 게 살아서 오일장장터에서 국밥을 다 사먹는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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