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신춘문예 열병’ 앓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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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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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마다 몸과 마음이 달뜨고 밤잠을 설치는 이들이 있다. ‘신춘문예 열병’을 앓는 작가 지망생들이다. 유명 작가들 역시 젊은 시절 한때 이런 홍역을 치렀다. 수천 명의 응모자 가운데 당선자는 오직 한 명. 그들은 어떤 열망에 사로잡혀 이 시기를 보냈을까.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자신의 등단기를 전해왔다.》

본보 통해 등단한 작가들 지망생들에게 보내는 조언



○ ‘불리한 환경, 마음먹기 달렸다’

소설가 김연수 씨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에는 ‘키친테이블 노블’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전문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노트나 컴퓨터에 무언가를 쉼 없이 끼적이는 이들의 소설을 뜻하는 말. 신춘문예 응모자들 중 이런 ‘키친테이블 노블’을 쓰는 직장인, 주부들도 다수다.

1990년 마흔의 나이로 뒤늦게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중견 시인 박라연 씨(58) 역시 스승이나 문우도 없이 방송통신대를 다니며 혼자 시 공부를 했다. 유일한 교재는 신춘문예 당선작품집. 박 씨는 “다른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등단작 모음집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날마다 읽었다”고 말했다.

2008년 학술논문 형식을 패러디한 독특한 단편소설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으로 등단한 소설가 조현 씨(40) 역시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뒤늦게 작가가 된 경우다. 현재 계간 ‘자음과 모음’에 장편소설 ‘유니콘’을 연재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나이 든 신인’. 그는 “시간 부족, 집중력 저하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직장을 통해 얻는 체험 모두가 생생한 작품 소재가 될 수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글 쓰는 환경이 힘들다면 기성 등단작가의 형편없는 글을 찾아 읽으라”고 귀띔했다. “이렇게 형편없는 글도 출판된다고 생각하면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

○ ‘오랜 습작으로 자기세계 구축해야’

‘예외적 작가의 탄생을 예감한다’는, 그야말로 예외적인 심사평을 받으며 단편소설 ‘바늘’로 화려하게 등단한 소설가 천운영 씨(38). 그는 등단을 준비 중인 이들에게 “당선을 떠나서 신춘문예 열병을 앓는 것 자체가 대단히 아름다운 경험”이라고 전했다. “그러다보면 당선은 뒤따라온다”는 것.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그는 등단까지 6년이란 짧지 않은 습작기를 거쳤다. 천 씨는 “힘들기는커녕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소설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10년 동안 소설을 써보자는 생각이었어요. 확신이 서면 그때부터 또 10년 정도 쓰면 작가가 되겠거니 생각했죠. 이 정도면 빨리 등단한 편이죠.”

등단 2년 만인 지난해 첫 시집 ‘검은 고양이 흰 개’를 낸 곽은영 씨(34)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그는 “등단이란 완성된 시인으로 활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론 부족하다”며 “기성 시인들과 견주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자기 스타일이 구축됐을 때 당선이 되어야 진정한 등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우표 붙이는 정성까지 모두 문학’

시인 안도현 씨(48)와 소설가 은희경 씨(50)는 응모자들을 위해 실질적인 조언을 했다. 안 씨는 “사유의 참신성이나 언어의 견고성은 기본이고 컴퓨터 글쓰기가 대세인 만큼 원고지나 편지지에 쓰는 것보다 프린터로 출력해 보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신춘문예는 쓰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봉투에 넣고 풀칠을 하고 우표를 붙이는 것까지”라며 응모할 때의 정성과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은 씨는 열려 있다는 점을 신춘문예의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문창과 출신도 아닌 데다 문화센터를 다닌 적도, 문예지를 본 적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신춘문예만큼 열린 문이 없다”며 “신춘문예에 유리한 경향이나 형식 같은 것은 없으니 세련되게 쓰기보다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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