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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이상헌]꽃가루 화석에 찍힌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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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이상헌]꽃가루 화석에 찍힌 한반도

입력 2009-04-09 03:01수정 2009-09-2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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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이 되면 흩날리는 꽃가루 때문에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꽃가루는 불청객이다. 하지만 꽃가루는 식물이 번식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식물의 생식기관인 수술의 꽃밥에서 생산되는데 스포로폴레닌이라는 견고한 단백질로 돼 있어 정자를 암술에 안전하게 전달하여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하게 한다. 또 10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이하로 아주 작아서 눈으로 관찰하기는 어렵고 현미경으로 보아야 한다. 껍질이 매우 단단하고 생산되는 양이 많아 오랜 지질시대를 거쳐도 화석으로 남을 확률이 높다. 화석으로 남은 꽃가루 군집을 보면 당시의 식생과 기후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고고학과 인류학 분야에서 유용하게 사용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과거 식생과 기후의 복원이다. 지구온난화 같은 기후변화가 미래에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과거의 재현이 중요하다. 주식시장에서 과거 주가변동을 자세히 분석하면 미래 주가변동을 예측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기후변화를 잘 반영하는 것이 식생변화이다. 추워지면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많아지고 더워지면 가시나무 같은 상록활엽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지금 우리나라는 온대기후대에 속해 있지만 꽃가루 화석을 보면 5000∼6000년 전 무렵에는 기온이 지금보다 더 높은 아열대기후대였다. 필자는 꽃가루 화석을 이용해 우리나라의 과거 7000년 동안의 식생변화와 기후변화를 복원했다.

둘째, 석유자원 탐사개발에 이용하는 것이다. 꽃가루 껍질은 탄소 수소 산소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유기물로서 온도에 민감하다. 원래는 밝고 투명한 연노란색이지만 온도가 올라가고 압력을 받으면 질량이 가벼운 수소가 떨어져 나가고 탄소만 남아 어둡고 불투명한 검은색으로 변한다. 가장 경제성 있는 원유의 성숙 단계를 나타내는 꽃가루 화석의 색깔은 투명한 진노란색이다. 유전지대에서 원유 채굴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나라 중생대 후기의 경상분지 퇴적암에 함유된 꽃가루 화석은 열변성작용을 아주 심하게 받아 어둡고 불투명한 검은색을 나타내므로 유감스럽게도 석유의 잠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셋째, 우리 조상의 생활상 재현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일찍이 정착 농경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최근 네이처지는 중국의 논농사가 8000년 전 양쯔 강 유역에서 시작해 북방으로 이동했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농경활동의 지표식물인 벼 메밀 조 옥수수 같은 초본류의 꽃가루 화석을 분석함으로써 농경활동 시기와 식생활 형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농경지를 개간하기 위한 산림 벌채와 화전에 대한 증거도 목본류의 꽃가루 화석과 숯의 분석을 통해 확인한다. 고고유적 발굴지와 습지 퇴적물에서 추출된 꽃가루 화석에 의하면 우리나라 논농사는 3500년 전, 밭농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논농사 기원지가 어디인지, 이동경로가 어떤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더 심도 있게 꽃가루 화석을 연구해야 한다.

현미경을 통해서만 관찰할 수 있는 매우 작은 화석이지만 꽃가루는 유용한 정보를 준다. 봄철만 되면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약국에 들러야 하고 차에 뽀얗게 쌓인 꽃가루 때문에 돈 들여 세차를 해야 하지만 나는 이들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 때문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한다. 꽃가루 화석을 찾아 나는 오늘도 행복한 마음으로 현미경 속을 들여다보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이상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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