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기자가 만난 문화의 뜰] ‘또 다른 나’를 찾는 치명적 유혹,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 입력 2009년 2월 12일 17시 10분


13년째 인기를 유지하는 밴드 자우림은 언제나 팬을 배신하는 음악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가수 양파는 데뷔 초 여러 겹의 ‘양파 껍질’을 벗기듯, 다른 멋을 꾸준히 보이겠다며 ‘양파’라는 특이한 이름을 썼다.

직업이나 나이를 막론하고, 스타들은 자신의 다른 모습을 찾는 것에 적극적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는 과정은 어렵지만 ‘매혹적’이라 포기할 수 없다.

자신을 ‘배신’하는 것은 정작 본인에게는 고통이지만, 바라보는 이에게는 호기심과 사랑의 대상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기 아주 오랫동안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변신을 고심 중인 '스타 박사님'이 계신다. ‘지킬’이자 ‘하이드’, 헨리 지킬! 지킬앤하이드 박사다.

지킬 박사의 실체를 관객이 알아챌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다. 매일 밤 LG 아트센터에 출몰해 보랏빛 그늘 아래 오싹하게 관객을 자극하고 있는 지킬 박사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관객을 매일 밤 객석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박사는 한 몸이지만 또 한 몸이 아니기도 하다. 그는 약을 통해 통제할 뿐, 야수 같은 ‘하이드’도 됐다가 젠틀맨 ‘지킬’도 됐다가 오락가락 한다.

무대에 올릴 때마다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관객이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끝까지 서서 바라보는 ‘지킬앤하이드’, 대체 왜 오랫동안 인기일까?

○ 밝음과 어둠을 오가는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

지킬 박사는 정상이 아니다. 촉망받는 의사였지만, 밤에 홀로 작업실에 들어가 꿍꿍이를 벌이며 실험을 하다보니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꺼냈다. 바로 ‘하이드’였다. 그는 약물 증상을 체크하다가 자신이 하이드가 된 것을 발견한다.

아버지의 정신병으로 인해, 정신을 분리하기 위해 애쓰던 지킬은 결국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했으나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 선과 악을 넘나드는 야수성의 인간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스스로도 통제 불가능이다. 권위주의적인 사회 인사들을 하나둘 살해하다 결국 사랑하는 여인 ‘루시’까지도 가만두지 않는다.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던 착한 신사 ‘지킬’이 성적 욕망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하이드’라니! 가장 놀란 사람은 정작 본인이다. 그는 선행과 악행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목숨을 끊어버린다.

그렇지만 지킬 박사가 팬을 몰고 다니는 이유는 밑바닥까지 악인은 아닌 까닭이다. 선악을 오가는 인간이라기보다는 ‘헷갈리는’ 인간이 더 맞을 것이다. 사람을 어찌 악인과 선인으로 자로 줄 재듯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을까?

지킬은 하이드로 변하는 것에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하며 고뇌한다. 자신이 하이드로 변한 이후에 발생할 사고를 막기 위해 애쓰는 등, 심신의 피로가 무진장 심하다.

뮤지컬은 바로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과 자괴감에 빠지는 자아를 장장 2시간 넘게 보여 준다.

누구도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보편적인 인간의 실체에 대한 고민으로 ‘지킬앤하이드’는 관객을 매일매일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2004년 국내에서 초연된 이후, 2006년, 2008년 총 5회 동안 앙코를 공연을 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왕의 귀환’이란 부제로 김우형, 소냐, 김선영 등 예전 배우들과 홍광호, 임혜영, 김수정 등 신인 배우들이 참여했다.

김우형, 홍광호, 류정한 남자 주인공과 소냐, 김선영, 김수정 등 여자주인공들이 자신만의 매력을 각기 발휘해 캐스팅에 따라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가창력과 감정 표현으로는 소냐와 홍광호가 호평을 얻었고, 김우형, 김선영은 로맨스를 잘 부각해 인기를 얻고 있다.

○ 대중적인 인기 소재, 중년 관객의 환호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이미 원작소설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작품이다. 지킬과 하이드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다.

마치 ‘마징가제트’의 악당 아수라 백작처럼 딱 반을 나눈 인간이다. 극 후반부 주인공이 지킬과 하이드를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은 ‘지킬앤하이드’에서 가장 압권이다. 양면성을 오가는 배우의 연기력에 박수가 쏟아진다.

인간의 이중성과 초인적인 능력은 단연 대중적 인기 소재다. 어둠을 받아들이지만 그 때문에 고뇌하는 당사자. 한쪽에서는 그 주인공을 측은히 바라보는 매력적인 연인이 있다.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와 각자의 인간적 고민이 작품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다크나이트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할리우드 맨 시리즈처럼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한 작품이다. 선악 대결에 러브스토리까지 가미돼 대중적인 입맛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소재였다.

인간 내면을 다루는 심각한 주제이지만, 상업성도 갖추어 고급스럽다는 평가다. 특히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다른 작품에 비해 중년 남성 관객들이 많이 본다. 주인공에 대한 여성 팬들의 순정으로 흥행은 언제나 1순위지만, 유난히 양복신사를 많이 만날 수 있는 게 ‘지킬앤하이드’의 특색이다.

커튼콜 때 중년의 관객들이 일어나 열심히 박수 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선과 악에 대한 고민, 자기변명, 자기합리화, 생활의 스트레스를 모두 작품에 이입해서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춤과 노래의 쇼적인 부분도 화려한지라, 적당히 근엄하고 적당히 즐거워 선택이 부담 없다.

○ 마음 따라 위로 받을 수 있는 ‘지킬앤하이드’의 명곡

“앗, 그 노래도 ‘지캘앤하이드’ 곡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킬앤하이드’에는 대중적인 인기곡이 많다.

갓 이별을 겪은 이라면 ‘원스어폰어드림(Once Upon A Dream)'의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어느 꿈엔가”라는 가사가 심금을 울리고, 사회생활에 허덕이는 지친 직장인들이라면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에서 “남은 건 이제 승리 뿐”을 들으며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꿈 간절한 기도, 절실한 꿈”을 통해 위로받자. 어떤 경우에든 ‘나’를 사랑하자고 마음먹은 이라면 ‘새로운 인생(A New Life)'을 들으며 계속 자신을 다독이면 좋겠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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