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까지 널 지켜줄게”… 애니 ‘벼랑 위의 포뇨’ 개봉

  • 입력 2008년 12월 9일 03시 00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포뇨와 소스케의 이야기를 통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서 왕자가 져야 했던 책임을 재해석한다. 사진 제공 이노기획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포뇨와 소스케의 이야기를 통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서 왕자가 져야 했던 책임을 재해석한다. 사진 제공 이노기획
“당신은 당신이 길들인 장미를 영원히 책임져야 해요.”

생텍쥐페리가 여우의 입을 빌려 ‘어린 왕자’에게 남긴 말. 18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에서 미야자키 하야오(67) 감독이 이야기하는 ‘사랑의 책임’은 그 여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바닷가 벼랑 위의 작은 집에 사는 소년 소스케 앞에 금붕어를 닮은 인어 소녀가 나타난다. 소스케는 앙증맞은 인어에게 포뇨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소스케의 피를 한 방울 마신 뒤 인간으로 변할 수 있게 된 포뇨는 소스케와 살기 위해 인어의 마법 능력을 버린다.

이야기 골격은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빌렸다. ‘좋아하는 인간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물거품이 돼 죽게 된다’는 설정도 같다.

하지만 결말은 해피엔딩. 미야자키 감독은 소스케를 통해 무책임했던 안데르센의 왕자를 은근히 나무란다.

영화 끝 부분에서 포뇨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그린 만마레’가 소스케에게 묻는다.

“포뇨가 인어라도 상관없나요?”

소스케는 망설임 없이 밝게 웃으며 답한다.

“전 물고기 포뇨도, 인어 포뇨도, 사람 포뇨도, 전∼부 다 좋아해요!”

누군가의 마음을 앗아간 책임을 지지 않았던 ‘인어공주’ 왕자의 우유부단함과 대조적이다. 그린 만마레는 관계의 득실을 계산하지 않는 천진한 소년 소스케에게 딸의 운명을 맡긴다.

사랑의 책임이라는 주제는 포뇨의 본명에도 암시된다. 포뇨 아버지인 마법사 후지모토가 잠깐 언급하는 딸의 원래 이름은 ‘브륀힐데’.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에서 지그프리트와 사랑에 빠져 신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는 여인의 이름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데뷔작 ‘미래 소년 코난’(1978년)에서부터 ‘사랑에는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 왔다. 코난은 생전 처음 만난 소녀 라나에게 첫눈에 반한 뒤 그 순정을 지키기 위해 온갖 역경을 꿋꿋이 이겨낸다. 이런 분투는 ‘천공의 성 라퓨타’(1986년)의 파즈, ‘모노노케 히메’(1997년)의 아시타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년)의 하쿠 등 좋아하는 소녀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 다른 소년들로 이어졌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년)처럼 박진감 넘치는 스펙터클은 ‘벼랑 위…’에 없다. 하지만 원화를 일일이 연필로 그린 화면에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에 없는 온기가 흐른다. 삐뚤삐뚤한 한글 타이틀 로고는 미야자키 감독이 직접 ‘그린’ 것. 글자 위에 올린 집과 포뇨 그림이 영화 속 소스케가 아버지와 주고받는 모스 부호처럼 정겹다.

소스케는 포뇨에게 “걱정 마. 내가 지켜줄게”라고 거듭 약속한다. 미야자키 감독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실에서는 지킬 수 있는 약속이 거의 없다. 영화 속에서만이라도 어떻게든 끝까지 약속을 지켜내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변화무쌍한 세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행복한 기분을 안기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일본 팬들은 4년 만에 돌아온 노장의 신작을 개봉 41일 만에 관객 1000만 명이라는 폭발적 흥행으로 환영했다. 이 작품의 배경에 가득 깔린 글라디올러스의 꽃말은 ‘사랑의 열정’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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