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년-사랑의 詩]강은교/‘사랑법’

  • 입력 2008년 3월 21일 02시 58분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깊은 허무에서 발원하여,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을 거쳐, 목숨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지평을 넓혀온 강은교의 시편들은, 무가(巫歌)와 기도의 형식이 견고하게 결합된 간절한 울림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시편들은 사물들이 내지르는 섬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그림자나 작은 움직임에 눈길을 주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깊이 어루만지면서 자신만의 우주적 근원적 ‘사랑’을 완성한다.

시인이 말하는 ‘사랑법’은, 우선 ‘떠나고 싶은 자/떠나게 하고/잠들고 싶은 자/잠들게’ 하는 것에 있다. 가령 그것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가 홀로 떠나고 잠드는 시간을 충실하게 바라보고 견디는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과 ‘하늘’의 광활함과 ‘무덤’의 잠듦을 상상하는 이 침묵의 시간에, 시인은 서두르지 말고 ‘실눈’을 뜬 채 떠나는 이의 모습을 바라보라 한다. 그때 그의 등 뒤로 ‘가장 큰 하늘’이 비로소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가장 큰 하늘’은 자신만의 ‘사랑법’을 완성한 이가 맑은 눈으로 응시하게 된 새로운 삶의 차원을 뜻한다.

이처럼 강은교의 ‘사랑법’은 새로운 ‘하늘’을 바라보게 하면서, 생명체로서의 존재 증명에 ‘사랑’보다 더한 것이 없음을 말한다. 우리가 단테의 ‘신곡’에서 그가 처음으로 베아트리체를 보았을 때 ‘나의 삶은 새로워졌다’고 한 경이의 순간을 ‘사랑’이라는 에너지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강은교에게 ‘사랑’은 자발적 고독의 순간 찾아오는 존재 증명의 힘이요, 불모의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원천적 꿈이다. 그때 비로소 오랫동안 꿈쩍도 않던 ‘날개’와 ‘강물’과 ‘구름’과 ‘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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