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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0>인체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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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0>인체사냥

입력 2008-03-14 03:00수정 2009-09-2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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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몸을 ‘사물화’하는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우리의 감성에 상처를 준다. 실험은 우리를 비인간화한다. …의약품 개발은 인간에 대한 실험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실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올바르고 정당하게 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항생제 ‘페니실린’,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 그리고 ‘비아그라’.

신약의 힘은 위대하다. 생명 자체를, 또는 그에 상응하는 절망으로부터 인간을 구해냈다. 신을 향한 기도를 넘어 과학이 가져다준 선물. 약은 인간이 자연을 제어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학적 행위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약은 발명 혹은 개발 자체로 힘을 발휘할 순 없다. ‘검증’이 필요하다. 동물 실험도 부족하다. 인간에게 효과가 있는지 확인돼야 한다. 그 때문에 신약 임상시험은 피할 수 없는 선택. 그렇다면 우리의 손에 도착한 이 한 알의 약은 어떤 과정을 거쳐 ‘복용해도 괜찮다’는 확답을 얻은 것일까. 저자는 바로 이것이 궁금했다.

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인 저자의 눈에 비친 신약 개발 현장은 과학이란 미명 아래 제3세계에 가해지는 ‘폭력’이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책이 나온 2006년 서구 대형 제약회사들은 임상시험의 30∼50%를 미국과 서유럽 밖에서 실시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해외 임상시험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물론 단순히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한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 대가로 부족한 의학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는 회사도 많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 등지에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수백만 명은 이를 공짜 치료제로 착각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세계의사협회가 정한 ‘구체적인 설명에 근거한 환자의 자발적 동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수를 구하기 위한 희생’이란 항변도 저자의 눈에는 치졸한 변명이다. ‘성기능 장애 치료제’를 예로 들어보자. 노화 연구에 따르면 40∼70세 남성 중 절반 이상은 성생활에서 한두 차례 문제를 겪곤 한다. 이는 나이와 흡연, 과체중 때문에 생긴 것이고 따라서 ‘발기부전’ 자체는 심각한 병이 아니다. 하지만 실패한 협심증 치료제가 발기부전에 효과가 있다는 걸 발견한 제약회사들은 이를 성기능 장애라고 심각하게 포장한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은 자연스레 감춰진다. 모든 건 사업적 마인드에서 이뤄진 셈이다.

“임상시험의 주된 업무는 건강을 증진하거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임상 연구는 사업이지 사회봉사 활동이 아니다. 임상 연구가 사리(私利)를 추구하는 사업인 만큼 우리는 연구자들이 법을 편리하게 해석하거나 위반할 때 모르는 척해주는 특별한 아량을 베풀 이유도 없다. …진정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의학 연구를 원한다면 우리 스스로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과학은 위대하다. 그러나 위대한 만큼 책임이 따른다. 과학이 순수 목적을 잃어버리고 비즈니스로 전락할 때 인간에게 끼치는 폐해는 그 순기능보다 더 위험하다. 이 책을 추천한 이종필 한국과학기술원 고등과학원 연구원의 말처럼 “과학이 왜 인문학적 윤리가 담보돼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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