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년-사랑의 詩]김수영/‘사랑’

  • 입력 2008년 2월 22일 02시 55분


《사랑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사무치게 그리운 얼굴은 가끔 불안한 그림자처럼 흔들린다. 여기 한 사람의 얼굴이 있다. 그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우게 했던 그 얼굴이다. 그 얼굴은 어둠과 불빛이라는 대조적인 조건에서도 언제나 완전하고 환한 얼굴이어야 한다.

그런데 사랑의 얼굴은 어둠과 불빛 사이의 그 짧은 시간에 불안하게 꺼졌다가 살아난다. 마치 흔들리는 촛불의 이미지처럼 너의 얼굴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왜 그럴까? 시는 그 불안한 얼굴의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 얼굴에 스치는 균열의 순간을 말한다. 그 균열은 ‘번개’의 이미지를 만난다. 번개의 돌발성과 불길함은 너의 얼굴의 불안을 가장 날카롭게 표현한다.

너의 얼굴에 금이 간 것은, 다만 너에게 속한 사건일까? 어쩌면 그 얼굴의 불안함은 내가 그린 당신 얼굴의 균열, 결국 내 마음 안의 사건이 아닐까? 금이 간 것은 너의 얼굴이 아니라, 너의 얼굴을 향한 나의 시선, 그 시선의 피할 수 없는 불길함이다. 사랑하는 당신의 이미지는 ‘번개’처럼 불안하고, 사랑은 그 불안을 견디며 그 불안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모든 사랑의 얼굴에는 균열의 순간이 예비되어 있다. 김수영에게 부여된 ‘참여시인’이라는 칭호는 너무 안이하고 무겁다. 그는 당대의 누구보다 현대적인 생활의 한가운데서 시를 썼고, 사랑에 깊이 ‘참여’한 시인이었다.

이광호 평론가·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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