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도올의 저술이 학문적 전문성과 엄밀성을 갖추지 않은 에세이 수준인데도 대단한 석학으로 대접받는 게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사례를 닮았다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도올이 수많은 저서에서 제대로 된 고전번역서를 펴내라고 한국학계를 향해 사자후를 토했으나 정작 자신이 제시한 기준에 걸맞은 번역서를 하나도 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
도올은 미국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1982년 처음 발표한 ‘우리는 동양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란 글에서 엄격한 직역, 일상어화한 의역, 상세한 주석, 개인적 해설 등 네 가지를 갖춰야 참된 번역이라 주장한 뒤 기존 학자들의 고전 번역을 질타해 왔다. 그런데 김 씨는 정작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도올의 번역서는 하나도 없다고 지적한다.
김 씨는 이처럼 객관적인 성과가 없는데도 도올이 대단한 고전번역자로 행세하는 것은 결국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음이 밝혀지자 줄기세포 원천 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 황 전 교수의 복제판이라고 지적했다.
도올은 이처럼 자신이 짧게 발표한 글을 유명인의 이름을 빌려 갑자기 세계적 이론이나 논문으로 둔갑시켰으며, 민주화운동 시기의 행적도 이와 유사하다고 김 씨는 지적한다.
한 예로 1986년 교수직을 사임하며 도올이 발표한 ‘양심선언’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한 고려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불참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민주화투쟁의 하나로 바뀌었다는 것.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을 “보편사적 후천개벽운세의 개합을 결단할 수 있는 실존적 행운을 소유한 유일한 세계사적 개인”이라고 극찬하는 글을 썼다가 나중에 ‘도올 세설’이라는 책에선 “현직 대통령을 ‘살인자’로 규정한 글”로 둔갑시킨 것도 그런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 씨의 도올 비판은 학문 영역에만 멈추지 않는다. 그는 도올의 저서 내용을 토대로 도올이 1986년 ‘양심선언’에서 옹호했던 고려대 비(非)서명파 교수를 향해 3년 뒤 갑자기 비난하기 시작한 이유는 자신의 고려대 복직 좌절에 대한 앙갚음이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본보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도올의 집필 공간이 마련된 통나무출판사 관계자는 “도올 선생은 자신에 대한 비난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필요하면 직접 글로 할 것”이라고 답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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