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동인 ‘이음’ “전공 넘나드는 지식의 난장 열어요”

  • 입력 2007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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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이음’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6명의 ‘이음’ 편집동인들.왼쪽부터 전용훈 서울대 과학문화센터 연구원, 강호정 이화여대 교수, 최정규 경북대 교수,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김호 경인교육대 교수, 윤병무 시인. 이훈구 기자
1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이음’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6명의 ‘이음’ 편집동인들.왼쪽부터 전용훈 서울대 과학문화센터 연구원, 강호정 이화여대 교수, 최정규 경북대 교수,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김호 경인교육대 교수, 윤병무 시인. 이훈구 기자
시작은 이랬다. 1967년생 숭실고 동창 세 명이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10여 년 만에 모였다. 2004년 겨울, 셋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다 공부한 분야는 달라도 서로의 고민은 닮아 있다는 점에 놀랐다. ‘규모(scale)’와 ‘창발성(emergence)’의 문제였다.

규모의 문제는 특정 규모에서 설명과 예측 가능한 일이 그보다 크거나 작은 규모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창발성은 개체 차원에선 발생하지 않던 현상이 집단 차원에선 개체 간 상호작용의 결과로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실험실에서 관찰되는 현상과 야외 생태에서 관찰되는 현상의 차이를 생태학에선 위계이론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규모와 창발성의 문제와 연결됩니다.”(강호정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경제학에선 규모와 창발성의 문제를 ‘거시적 질서의 미시적 기초’라고 부릅니다.”(최정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저는 과학정책을 전공했는데 과연 정책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 훌륭한 정책 결정이 이뤄지느냐는 문제를 고민 중이었습니다.”(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여기서 이들은 의기투합했다. 이에 대한 연구를 해당 전공 분야가 아니라 물리학 천문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와 공동 작업을 펼쳐보기로.

혼성문화 무크지 ‘이다’의 동인이었던 주일우 실장이 다양한 사람을 끌어 모았다. 이다의 동인이었던 시인 윤병무 씨와 한국 전통과학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한 책 ‘물구나무과학’의 저자 전용훈 서울대 과학문화센터 연구원, 조선시대 법의학을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전환시킨 김호 경인교육대 교수가 참여했다. 격주로 금요일마다 모여 난상토론을 벌이던 이들의 관심사는 다산 정약용 이후 최고의 실학자라는 혜강 최한기의 재조명, 과학과 대중의 의사소통, 문화와 정치의 역학관계로 확산됐다.

이렇게 해서 편집동인 ‘이음’이 결성됐다. ‘이음’ 안에는 서로 다른 전공 분야를 이어준다는 뜻, 서로 다른 소리라는 이음(異音), 전자시대의 공동체라는 뜻의 ‘e-um’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음은 원래 이들이 발간하려던 문화과학 무크지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잡지시장의 불황으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아예 출판사를 차리고 공동 집필한 단행본 수익으로 무크지를 발행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첫 작품은 지난달 출간된 ‘다윈의 대답’(전 4권). 1999년 미국 예일대 출판부에서 펴냈던 ‘오늘의 다윈주의’를 번역하고 논쟁적 해제를 붙인 이 책은 유전자결정론을 비판해 온 환경결정론의 오류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공동 기획한 통섭원 개원 심포지엄 발표문을 모아 ‘지식의 통섭’을 출간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여섯 명이 모였을 때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음’ 편집동인이야말로 바로 창발성 연구의 살아 있는 실험 대상인 듯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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