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한 성관계 도중이라도 거부의사 무시땐 강간으로 봐야”

  • 입력 2005년 7월 1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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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된 성관계 도중이라 하더라도 여성의 거부 의사를 무시한 채 강제로 성관계를 계속했다면 강간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민일영·閔日榮)는 14일 성관계 도중 상대 여성의 ‘그만하자’는 의사를 무시한 채 상대 여성을 때리고 강제로 성행위를 계속한 혐의(강간치상)로 구속 기소된 이모(32) 씨의 항소심에서 이 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씨는 “합의된 성관계였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씨는 2002년 12월 컴퓨터 채팅을 통해 A(31) 씨를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이 씨는 한번 결혼해 아들까지 둔 뒤 이혼했지만 자신의 ‘전력’을 숨기고 A 씨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씨는 A 씨가 이 씨의 결혼 전력 등을 알아채고 지난해 2월 헤어지자고 하자 “죽을 때까지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겠다. 가족들도 가만두지 않겠다”며 협박했다. 이 씨는 A 씨에게 “2004년 말까지 주말에 한 번 만나 성관계를 해 주면 그 뒤에는 놓아 주겠다”고 제안했고, A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A 씨는 1년 가까이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가져왔지만 해가 지나도 이 씨가 자신을 놓아 주지 않자 1월 말 자신의 집에서 성관계 도중 “그만두라”며 이 씨를 뿌리쳤다.

그러나 이 씨는 A 씨의 뺨을 때리고 팔을 비틀며 다시 한번 관계를 가졌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피해자의 집에서 합의하에 성관계를 갖긴 했지만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때리고 강간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강간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서울고법의 한 여성 판사는 “예전 같았다면 두 사람 간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포괄적으로 인정했을 수도 있다”며 “강간죄를 좁게 해석해 온 이전의 판례보다 한 걸음 진전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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