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한심한 아줌마’ 만드는 사회

  • 입력 2004년 8월 8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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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행하는 ‘한심한 아줌마’ 시리즈의 한 토막.

시리즈 1편. 현금 5억원도 없으면서 강남으로 이사 가자고 조르는 아줌마. 2편은 현금 10억원도 없으면서 의사나 변호사 사위 보겠다고 덤비는 아줌마.

3편이 압권이다. 의사 딸, 박사 며느리 두었다고 자랑하면서 애 업고 다니는 아줌마란다.

그런데 1, 2편을 듣고 한참 웃다가 3편을 듣고는 왠지 코끝이 찡해진다. 딸과 며느리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손자손녀를 돌볼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한심한 아줌마의 전형(典型)이란 말인가.

아니, 그보다는 한 여성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다른 한 여성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 비극적 현실이 희극의 소재란 사실이 서글프다.

출가한 두 딸이 툭하면 와서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는 한 어머니의 고백.

“손자손녀들이 와서 재롱을 피우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세상 시름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근데 손자손녀들이 가버리면 더 행복하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까이 살면 손자를 돌봐 달라고 할까봐 자녀들이 결혼하는 즉시 낙향하겠다는 노부부도 보았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계유지도 힘든 시대다. 그런데 보육인프라가 취약하다 보니 자녀양육이 노부모의 몫이 되고 있다. 최근 처가, 구체적으로 장모의 발언권이 커지는 것도 장모가 손자를 돌봐주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옛말에 ‘애 본 공(功)은 없다’고 했다. 육아가 얼마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인지 잘 나타내는 말이다.

물론 자녀를 노부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젊은 부부의 사정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조선족 출신의 보모에게 아이를 맡겼는데 아이가 밤마다 잠을 안 자고 보채는 겁니다. 보모 몰래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이 보모가 낮에 아이를 재우고 외출해 친구들을 만나는 거예요.”

유학까지 다녀온 고급두뇌인 이 젊은 엄마는 지금 퇴직과 노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문제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모두 보육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최근 정부에서도 보육시설 확충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소득층 또는 셋째아이에 대한 보육비 지원규모를 늘리고 보육시설 평가제나 보육교사 자격증을 도입하겠다는 것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의 보육정책은 저소득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중산층을 위한 보육정책은 취약하다. 요컨대 웬만큼 사는 사람들은 알아서 아이를 키우라고 하는 것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1994년 5개년 계획으로 ‘에인절플랜’을 도입했던 일본은 0∼2세 보육, 오후 6시 이후 보육 등을 강화하면서 공보육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았다. 단순히 보육시설의 수를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는 2000년부터 ‘뉴에인절플랜’을 통해 휴일보육 및 재택어린이 지원 등 보육의 질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보육의 질이다. 여성들도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보육정책도 질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정성희 교육생활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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