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옴니버스 호러 영화 ‘쓰리 몬스터’

  • 입력 2004년 8월 5일 16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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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한국), 미이케 다카시(일본), 프루트 챈(홍콩) 등 3개국의 재기발랄한 감독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호러 영화 ‘쓰리 몬스터’. 20일 개봉 예정인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닮음이나 균형이 아닌, 우열과 차이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영화마다 수준이나 들인 공력에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이 영화는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편안한 마음보다 ‘제대로 된 단 하나의 영화’를 발견한다는 절실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한참 물이 오른 박찬욱 감독은 발군이다. 그가 내놓은 영화 ‘컷(Cut)’은 중의적 제목(영화감독이 외치는 ‘컷’과 손가락을 자를 때의 ‘컷’)만큼이나 비주얼과 공포심리를 찐득찐득하게 교미시킨다.

박 감독은 3일 기자시사회장에서 농반 진반으로 말했다. “내 좌우명은 이것이다. 등장인물들에게는 고통을, 투자사엔 기쁨을!” 정말 그는 ‘컷’에서 등장인물들에 대해 악취미적이면서도 다분히 탐미적인 사디즘(가학증)을 멈추지 않는다.

돈 많고 재능 있고 착하기까지 한 영화감독(이병헌)의 집에 괴한(임원희)이 침입한다. 괴한은 감독을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납치한다. 감독이 끌려간 곳은 자신의 집과 똑같이 만든 촬영세트장. 그곳엔 감독의 어린 아내(강혜정)가 피아노 줄로 꽁꽁 묶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괴한은 길거리에서 데려온 아이를 죽이지 않으면 아내의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겠다고 감독을 협박한다. 그는 점차 패닉 상태에 빠진다.

바로크풍의 세트장과 고전음악, 그리고 완벽하게 배우들의 연기를 통제한 상황에서 실시간의 속도로 진행되는 이 심리 잔혹극은 퍼포먼스를 많이 닮았다. 인물들의 제스처는 연극적이며, 아내의 눈가에 저주처럼 흘러내리는 검은 마스카라와 몸에 칭칭 감긴 수십개의 피아노 줄은 아내를 인형처럼 물화(物化)시키는 페티시즘의 극치다.

박찬욱은 설렁설렁하다가 갑자기 급소를 후벼 파고 들어오는 솜씨를 보여준다. 괴한은 예상을 뒤엎고 “이건 경우가 아니란 입장이유∼”와 같은 충청도 사투리를 어수룩하게 뱉어낸다. 절체절명의 선택의 기로에 놓인 극중 감독이 기껏 한다는 고백이란 “착해서 죄송합니다”다. 그는 괴한 앞에서 엉덩이로 제 이름을 쓰고 방귀를 뀌어댄다. 관객들이 이런 허허실실의 모습에 웃는 순간, 괴한은 손가락을 잘라버린다.

박찬욱은 ‘올드보이’에 이어 이번에도 죄의식과 고백이라는 원죄적 키워드에 집착하지만, 이번 영화가 보여주는 유머와 박자감각은 태생부터 다르다. 이 영화는 웃긴 다음 무섭게 만드는 게 아니고, 웃기면서 무섭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웃김으로써 무섭게 만든다. 다만 순식간에 비등점으로 치달아야 하는 영화감독의 카오스적 심리를 야생마처럼 폭발시키기보다 주도면밀하게 통제해 버리는 이병헌의 연기는 세련돼서 더 아쉽다.

영화 ‘박스(Box)’를 내놓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근작 ‘착신아리’에 이어 원귀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보인다. 호러 이미지는 수준급이지만, 지나치게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탓에 그 뒤에 숨어있는 사연은 치명적으로 가슴을 긁지 못한다.

쌍둥이 자매 교코와 쇼코는 의붓아버지 히키타와 함께 서커스를 하며 유랑생활을 한다. 교코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쇼코를 질투하다가 결국 쇼코를 죽이고 만다. 성장해 대인기피증을 앓는 교코는 쇼코의 환영에 시달린다. 어느 날 쇼코의 이름으로 된 초대장이 배달된다.

이 영화는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 위로 끔찍한 호러 이미지를 한 점 한 점 띄운다. 하지만 쌍둥이에 얽힌 콤플렉스와 정신적 외상(外傷)을 깊이 파고 들어가지 못한다. 맥락을 상실한 호러 영화의 종착역은 하나다. 화들짝 놀라지만 여전히 심심할 뿐이다.

‘메이드 인 홍콩’으로 알려진 프루트 챈 감독의 영화 ‘만두’는 엽기적인 줄거리 자체를 통해 공포 에너지를 발산한다.

한때 유명 여배우였던 칭은 젊어지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는 먹으면 젊어진다는 만두에 대해 알게 된다. 만두 덕에 몰라보게 젊어지면서 남편의 사랑을 되찾는다. 그는 어느 날 만두가 낙태한 태아로 만들어졌다는 충격적 비밀을 알게 되지만, 이미 만두에 중독이 돼버린 상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공포와 동행하는 청각 이미지. 만두를 한 입 한 입 씹을 때마다 흘러나오는 ‘오도독 오도독’하는 소리는 고막을 잔인하게 간지른다. 하지만 상당 부분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의 관성에 올라탄 탓에 잔혹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전체 상영시간은 2시간. 9월에 열리는 베니스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초청작이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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