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어? 우리아이 영재인 줄 알았는데…

  • 입력 2004년 4월 8일 15시 44분


코멘트
운동장을 마음껏 가로지르는 아이들. 아이들의 사회성과 대인관계는 이렇게 즐겁게 뛰노는 데서 가장 많이 발달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계없음.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운동장을 마음껏 가로지르는 아이들. 아이들의 사회성과 대인관계는 이렇게 즐겁게 뛰노는 데서 가장 많이 발달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계없음.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조기 교육’을 시키고 계시다고요? 늦으셨군요.

‘조기 교육’은 이제 옛말이고 ‘조기 영재 교육’ 바람이 분 지도 오래됐는데.

유치원도 아직 안 간 아이가 한글을 줄줄 외우는데, 우리 아이가 수학 과학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데, 뭔가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것이 마치 에디슨 같은데….

어떻게 그냥 놔두겠습니까.

설령 아무런 장점이 없어도 옆집 아이가 학습지를 하고 학원을 다니는데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 대한민국 부모로서 그것은 직무유기죠.

그런데… 아이는 행복할까요?

○ 불안감에 시험지 불태워

윤석이(가명)는 중학교 1학년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다독상을 탔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죠. 지능지수가 130이 넘는 윤석이는 어릴 때부터 영어 수학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습니다.

말도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로 아주 어른스럽게 하죠. 심지어는 “밖에서 운동을 하면 피부에 점이 생긴다”며 체육수업을 정중히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고 뭔가에 몰두하면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였지만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에디슨도, 아인슈타인도…. 영재들은 대개 그런 특성이 있다고 생각했죠.

윤석이가 영재라고 판단한 부모님은 영재성을 살리기 위해 수학학원에 보냈습니다.

학교가, 친구들이 평범해서 자기를 받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은 윤석이도,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한 차례 전학을 갔죠.

스스로도 영재라고 믿은 윤석이와 부모님의 꿈은 윤석이가 과학고에 가는 것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어느 날 윤석이가 교무실에 쌓여 있던 시험지를 불태우기 전까지 아무도 그가 영재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시험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해 불안감에 시달리던 윤석이가 시험 전날 한 행동이죠.

윤석이는 ‘아스퍼거(Asperger)’ 장애였습니다.

○ 아스퍼거와 비언어적 학습장애

머리는 좋은데 대인관계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지능지수는 높지만 그 또래면 대부분 잘하는 행동이나 친구간의 관계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죠.

이런 아이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아주 어린 나이임에도 대답을 백과사전식으로 한다든가 지도를 잘 읽고 지하철 노선을 잘 외우는 등등의 특성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강우량이 뭐냐”고 물으면 정색을 하고 “비가 평탄한 지면에 내렸을 때 흘러가거나 땅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땅 표면에 고인 물의 깊이”라고 말하는 식이죠.

대신 누구나 하는 행동, 즉 자전거 타기, 공 주고받기, 옷 갈아입기 등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많이 뒤처지죠.

‘반드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검사를 해 보면 상당수의 아이들이 ‘아스퍼거’나 ‘비언어적 학습장애’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쉽게 말하면 언어적 부분(공부 같은 학습능력)과 비언어적 부분(대인관계, 사회적 경험 등)이 균형 있게 발달해야 하는데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큰 아이들입니다.

보통 병원에서는 지능지수 검사를 한 뒤 언어성 지능과 동작성 지능의 수치가 10 이상 차이나면 의심을 하고 몇 가지 검사를 더 거쳐 진단을 내립니다.

문제는 갈수록 이런 증상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음샘 소아·청소년 클리닉 김은혜 원장은 “조기교육 붐으로 아이들의 언어적 능력은 자꾸 높아지는 반면 대인관계나 사회성을 기르는 부분은 점차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며 “양자의 차이가 커질수록 아이들이 이 같은 증상을 보이기 쉽다”고 말했습니다.

김 원장은 또 “과거에 비해 이런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요즘 세상이 영재, 경쟁, 조기 교육 등을 워낙 강조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학원, 컴퓨터, 영어, 학습지 같은 것은 중요시되지만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노는 것은 줄어든다는 것이죠.

이미 양자의 차이가 발생한 아이를 영재인 줄 알고 ‘영재 교육’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 에디슨도 그랬다고?

에디슨이 어릴 적에 달걀을 품고 부화시키려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단국대 특수교육과 신현기 교수는 “이는 에디슨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특정 부분이 과도하게 강조된 것일 뿐”이라며 “에디슨은 대인관계나 사회성도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신 교수는 또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성공지능’을 분석한 결과 가장 중요한 요건은 지능을 이루는 각 요소의 균형감이었다”며 “언어적 능력과 비언어적 능력의 조화가 깨지면 결코 영재성이 나타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개는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 결국 공부도 잘한다는 것이죠.

애들 때는 다 그런 것 아니냐고요? 우리 어릴 적에는 맞으면서 억지로 배웠어도 다 잘 컸다고요?

맞습니다. 그 말도 맞고요.

하지만 김 원장은 이런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부모들에게도 같은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결혼 기념일을 왜 기념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는 식이죠.

‘가족’이나 ‘가정’은 화목하고 기쁨이 넘쳐야 하는 곳이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기만 하는 가정도 많지 않습니까.

다시 공부나 영재, 조기 교육 이야기로 돌아가야겠군요.

아이가 피아노를 참 잘 칩니다. 유치원도 안 들어갔는데 소나타를 익히고 모차르트에다 바흐 인벤션을 섭렵하죠.

하지만 잘 보세요. 아이가 화음의 기쁨, 소리에 대한 신비로움, 음정과 음표에 대한 궁금증…. 그런 것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인 결과인지를요. 대부분의 아이는 피아노 선생님이 손으로 눌러준 건반의 순서를 외울 뿐입니다. 하기 싫어도 거부할 수 없어서 스스로 외우는 것으로 상황을 이겨내는 것이죠.

천재 모차르트가 그랬던가요?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신발 끈을 잘 못 매고 부주의하다.

―새로운 환경 적응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덧셈 뺄셈에서 숫자 자릿수를 잘 못 맞춘다.

―글씨를 너무 못 쓰고 사람 얼굴을 잘 기억 하지 못한다.

―길을 잘 못 찾는다.

―농담을 잘 이해 못하거나 행동 또는 표정 을 잘 못 알아차린다.

―위의 특성에 비해 지나치게 말을 잘한

다.

―위의 특성에 비해 퍼즐을 아주 잘 맞추고 백과사전을 좋아한다.

―또래 아이들과 안 친하거나 함께해야 할 놀이에 관심이 없다.

―때때로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

(도움말 마음샘 소아·청소년 클리닉 김은혜 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