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가정 자녀들, 부모 카드빚까지… “우리가 무슨죄”

  • 입력 2004년 2월 1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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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혼 가정이 급증하고 있으나 이들 가정의 자녀를 보호할 법과 제도적 장치가 부실해 이혼가정 자녀들이 이중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부모가 양육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해 아이들이 버려지는 경우도 있으며 위탁양육비를 노리고 이혼가정의 자녀를 데려다 학대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태=“어머니는 날 키우지도 않았는데 왜 제 앞길을 가로 막나요….”

최근 경북 안동시에 사는 중학교 3년생 A양(15)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 데다 아버지마저 결핵으로 지난해 사망하자 아버지가 진 카드빚 4000만원을 자신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는 것.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A양은 필사적으로 빚을 물려받지 않을 방법을 찾았으나 다른 남자와 재혼해 살고 있는 친모가 법정대리인으로서 상속 포기 절차를 밟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가정을 갖게 됐는데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친딸의 간곡한 요청을 차갑게 거절했다.

A양은 “친모가 살아 있는 한 다른 누구도 법정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얼굴도 모르는 딸이지만 너무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법원에 따르면 자녀를 가진 가정의 이혼소송은 1998년 2만3428건, 2000년 2만4186건, 2002년 2만8041건 등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모가 이혼한 자녀들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협의이혼 후 3남매를 혼자 키우던 홍모씨(41)는 이혼한 남편이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아 카드빚이 쌓였다. 홍씨는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3남매 중 두 명을 지난해 12월 보육원에 보내야 했다.

서울 관악구 상록보육원 부청하(夫淸河) 원장은 “지난해 29명의 원생 중 24명이 부모의 카드빚 때문에 들어왔다”며 “젊은 부부들은 재결합하는 비율도 낮아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보육원에서 자라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책=그러나 이들 자녀를 위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은 턱없이 부족하다.

A양의 탄원을 받은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 부채를 상속받는 것)을 규정한 법률에 미성년자를 위한 특별조항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친모를 설득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혼한 부모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형사 처벌할 규정이 없으며 이 경우 단순한 민사사건으로 처리돼 양육비 지급 판결과 벌금형이 선고될 뿐이다.

여성·아동 전문 법률사무소 ‘나·우리’의 이명숙(李明淑) 변호사는 “카드빚 등으로 이혼한 뒤 버려지는 어린이가 부지기수”라며 “양육비를 주지 않는 경우는 다반사고 심한 경우 아이를 버리기도 하지만 법률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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