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명성황후 순종 친필 편액 3점 공개

  • 입력 2003년 8월 6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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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명성황후, 순종(당시 왕세자)이 같은 날 같은 사람에게 써준 편액 3점이 공개됐다. 고종과 명성황후, 순종이 1885년 각각 ‘지포(芝圃)’ ‘지포산방(芝圃山房)’ ‘인담여국(人淡如菊)’이라고 써 당시 후영사(後營使·수도 경비 총책임자)였던 정낙용(鄭洛鎔·1827∼1914)에게 하사한 편액이다. 이것은 정낙용의 59세 생일을 기념해 써 내린 것으로 전한다. ‘지포’는 정낙용의 아호. 정낙용의 후손은 최근 민덕식 국사편찬위원회 교육연구관에게 편액을 공개했고, 민 연구관은 이 내용을 독립기념관보 8월호에 발표했다.

이 중 특히 명성황후의 휘호(가로 128.5cm, 세로 31cm)는 도서(圖署·글씨에 찍는 도장)가 남아 있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민 연구관은 “명성황후의 글씨는 현재 몇 점이 전해지고 있으나 이화여대 박물관에 소장된 ‘일편단충(一片丹忠)’이라는 글씨만이 명성황후의 확실한 친필로 인정되고 있을 뿐, 나머지는 명성황후의 친필이라고 전해지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고종의 휘호에도 주연지보(珠淵之寶)라는 도서가 뚜렷하다. 그러나 순종의 편액에는 도서가 없다.

왕과 왕비가 함께 친필 휘호를 내린 것으로 보아 당시 정낙용이 왕실에서 얻은 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강순형 궁중유물전시관장은 “왕과 왕비, 세자가 같은 사람에게 글씨를 써 내리는 일은 조선 왕실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정낙용은 후영사를 비롯해 통제사, 형조판서, 한성판윤 등을 지낸 조선 후기의 관료.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민치록(閔致祿)의 제자로 명성황후가 어린 시절 집안 어른처럼 따랐다고 전해진다.


왼쪽부터 고종, 명성황후, 순종의 글씨. 이 중 순종의 글씨는 12세 때 쓴 것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듯한 필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권주훈기자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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