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22년만에 막 내리는 '전원일기' 촬영장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5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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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장수 드라마인 MBC '전원일기'의 마지막 촬영이 있던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제작센터 C스튜디오. '김회장'의 극중 부인 김혜자는 촬영 전 마당 평상에 앉아 뜰안을 한참동안 응시했다.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무엇을 생각하세요?"

"그냥 봤어요." 그러고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눈물이 고이는 듯 했다.

"내 생애 다시 못 올 시간이 흘러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

그는 천천히 일어서 마당에 놓여있던 화분을 이리 저리 움직여도 보고 마루에 있던 도자기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윽고 방으로 들어가 돋보기 안경을 내려 쓰고 극중 손녀 인경이 돌 때 입을 색동 저고리의 동정을 달았다. 바느질 통을 뒤적이며 그는 "골무나 실패와도 이별하는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이날 촬영에 임하는 출연진의 모습은 착잡했다.

'김회장' 최불암은 "어째 오늘은 농담도 없네"라며 씁쓸해 했다. 29일 방송되는 마지막회(1088회)의 제목은 '박수할 때 떠나려고 했는데'. 1980년 10월 21일 첫회 '박수칠 때 떠나라'와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루는 제목의 마지막회는 향약의 전통을 잇는 '원동계'의 대표를 김회장과 그의 둘째아들(유인촌) 중 누구로 할 것인가를 놓고 마을 사람들이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담았다.

침울하던 현장 분위기는 22년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충실히 해온 '일용엄니' 김수미가 오랜만에 NG를 내 잠시 활기를 띠었다. 22년간 함께 일하며 가족이나 다름없는 호흡을 구사하기 때문에 전원일기 촬영장에서 NG는 쉽게 볼 수 없다. 대사도 맞추지 않고 바로 촬영에 들어갈 정도다.

이 장면은 서울에서 취직한 뒤 고향에 내려온 귀동(이계진)의 아들 노마를 일용엄니가 반갑게 맞이하는 것. 노마가 혼자 계신 아버지를 잘 보살펴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자 "대추탕도 끓여줬고 닭 백숙도 만들어줬다"며 공치사하는 장면이다. 제작진이 그의 능청맞은 연기에 '쿡쿡' 웃음을 터뜨리자 "왜 웃고 그랴∼"라며 NG를 낸다.

김수미는 서른 여덟되던 해 극중 환갑잔치를 치뤘다. 그 후 전국 각지의 할머니들로부터 선물이 답지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팬은 "왜 내가 보내준 옷을 입고 나오지 않느냐"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김씨는 그 때 받은 옷을 할머니가 되면 입으려고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기념사진 촬영을 끝으로 22년에 걸친 '전원일기'의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MBC 김중배 사장이 녹화장에 들러 "석양이 지면 아침이 오는 것처럼 '전원일기'가 밑거름이 돼 앞으로도 훌륭한 드라마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원동계 대표로 추대된 '김회장'이 전 출연진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세월의 흐름 따라 사람은 늙어간다. 박수할 때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사람이 서로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고 정에 연연하다 보면 그 기회를 잃고 만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또한 인생인 것을…."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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